추석이 다가온다. 여기저기 돈 들일이 많다. 시댁과 친정 그리고 인사를 해야 할 곳도 만만치 않다. 남편은 자기 집에는 고기 바구니를 보내라면서 친정엔 달랑 과일 한 상자 사가자는 걸 보면 속이 뒤집어 질 듯 불편하다. 자기가 번다고 자기 맘대로 써?
가정에서 경제권을 누가 갖는가는 첨예한 문제다. 요즈음은 맞벌이 하는 가정도 많고 아내들의 권리 주장도 당당하다. 나는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다보니 늘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 쓰는 처지다. 결혼 초 남편은 괜찮은 회사의 영업 과장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건지 항상 월급은 가불해서 다 쓰고 좀 남으면 주고 없으면 말고다. 쌀 사야 된다면 쌀값 주고 연탄 사야 된다면 연탄 값 주고 그랬다. 달랄 때 마다 주는 건 아마 가불해다 주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남편이 일정 금액을 주면 그것으로 이리저리 쪼개 살림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어느 해 가을인가 아마 추석 때 쯤 일 것이다. 이번 월급은 제발 봉투째 갖다 달랬다. 퇴근한 남편 두툼한 봉투를 내 놓기에 이번엔 제대로 주나 보다 했는데 아아! 돈은 없고 낙엽만 수북히 넣어왔다.
‘월급 봉투 다 내놔라. 내 친구 누구누구도 다 자기가 관리 한다. 나도 잘 할 수 있고 당신 보다 돈도 더 많이 모을 수 있다’ 그러면 늘 ‘다음 달부터 다 당신 줄게’ 그런다. 그러나 제대로 된 월급 봉투 받은 적 없다. 자기가 더 잘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고 못할 것도 없는데….
나는 돈은 모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슨 일 이 있을지 모르는 세상인데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돈은 쓰는 거다. 그러면서 그냥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닌다. 난 지갑에 1000원, 5000원, 만원짜리 순서대로 차곡차곡 넣는다. 남편은 지갑도 없다. 아무렇게나 뒤죽 박죽 접혀져 있는 것 뒤집힌 것 꾸깃꾸깃하다. 내가 또 한 말씀 한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돈의 비용이 얼만줄 아냐고?’ 그러면 남편은 이런다. ‘꾸겨졌다고 만원이 천원 되냐?’
경제권을 내가 쥐고 마음대로 생활비 쓰고 내 식으로 살림해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생들 용돈도 넉넉히 주고 친정 엄마에게 고운 옷 한 벌이라도 사드리면 좋을 텐데 그런데 남편 손에 있는 돈은 나올 줄 모른다. 친정에 준다고 할 때는 늘 쫄리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친정 부모님께 용돈 드릴 때는 남편이, 시부모님께 드릴 때는 아내가 드리는 게 좋다. 누구에게 경제권이 있든지 시댁과 친정 공평하게 선물하고 공평하게 찾아뵙고 자식된 도리를 양가에 똑같이 해보는 것으로 웃음과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한가위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영숙 원장(가정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