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의 한계 (가정문화원 김영숙)

늙는다는 것은 기억력을  잃어가는 것일까?
이상하게 어릴 적 기억은 또렷한데 요즈음 것들은 들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왜 그리 기억이 안 되는지. 나는 이렇게 변명한다. 컴퓨터도 하드가 꽉 차면 기억 장치 속으로 들어가질 않고 바로 튀어 나오듯 나도 머릿속이 꽉 차서 더 이상 기억장치가 작동하지 않고 들은 즉시 바로 튀어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말을 하려다가도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 한다. 특히 명사가 생각이 안 나서 그 단어를 설명하려다 보니 말은 더 길어지고 답답하다.
오랜만에 예전에 함께 사역하던 목사님을   만났다.  안부와 함께 아들은 요즈음  뭐하냐고 물어보셨다.
“ 회사 다녀요.”
무슨 회사냐구 하시는데 생각이 안 났다. 그래서 “영어 이름이라서 기억을 못해요.”
아들애가 정말 여러 번 가르쳐 줬고 명함까지 주며 확인 시켜 줬는데도 누가 물어보면 번번이 모르겠다고 한다.
“분당의 그 많은 새 아파트들 이름이 전부 외국어고 발음도 어렵게 지은 이유가 뭔지 아시나요?   시어머니들 찾아오기 어렵게 하려고 그렇게 지었대요.”
우스개 소리겠지만 너무 그럴 듯하다고 친구들끼리 웃었더랬다.
그랬더니 함께 있던 집사님이 이런 얘길 했다.
“어떤 사람이 메리어트 호텔에 약속이 있었어. 메리어트가 얼른 머리에 안 들어오자 메리야스라고 하면 되겠네. 그러면서 택시를 탔어. 기사가 어디로 가십니까? 묻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생각을 하다 하다 난닝구 호텔이요,  왜 그 터미널 옆에 있는 난닝구 호텔 말이에요. 그랬더니 기사가 메리어트 호텔에 데려다 줬다는구나. ㅎㅎㅎ”
그 기사도 아마 나이가 들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니 알아듣고 데려다 주었지.

젊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들이  곧잘 하는 말이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다.
사실 몰라서 라기 보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입에서 뱅뱅 돌면서 나오지 않은 것일 뿐이다.
그래서 모르면 가만히 계시라는  말은 정말 서운하다. 무시당하는 것 같다. 자존심 상한다. 늙음의 연민이랄까.
부모님들도 한때는 날렵하고 명석하고 지혜로워서 자식들을 이리도 잘 키웠건만 자식은 이를 무심해 한다. 이제 자식들은 모든 면에서 부모보다 강건하다. 몸도  생각도 빠릿 빠릿해서 부모들이 답답하게 여겨 질 것이다. 우리도 부모님께 한때 그랬던 것처럼.
기억력의 한계는 자칫 무식, 혹은 무능으로 비춰 질 수 있다. 그러나 늙어서는 알아도 모르는척하고 혹 남의 허물을 보았어도 짐짓 기억 안 나는 냥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던가?
그래서 며느리의 허물도 다 덮어주고 자식들에 대한 섭섭함도 곧 잊어버리는 것  그런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일 것이다. 점점 기억력이 쇠퇴해 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을 좀 더 단순화하고 간결하게 해서 하나님과만 교제하게 하시는 뜻일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도 결코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은 나의 구세주이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모든 것 다 잊어버려도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고 나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 결코 잊을 수 없나이다.
김영숙 www.familycultur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