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서울에서 양수리로 드라이브겸 나섰다.
쭈욱 벋은 양수대교 말고 한강변을 따라 옛길로 들어섰다. 가다 보니 봉쥬르라는 음식점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을 따라 언덕 아래로 구불구불 내려갔다. 모처럼 함께하는 외출이니 불란서 음식도 괜찮을 꺼야.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의외로 항아리 수제비와 쌈밥을파는 집이었다.
마침 초겨울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마당에는 타닥 타닥 장작이 타고 있었다.
집 앞으로는 기차가 길게 기적을 울리며 지나고 있고 한강은 유유히 흐르고.감미로운 음악까지…
아주 낭만적이어서 내 마음의 정서는 아주 부드럽고 편안했다. 불란서 음식이 아니면 어떠랴.
그런데,
여기저기 살펴보던 남편이 생뚱맞게스리,
“이집 무허가 건물 같은데, 건축 허가는 받았을까?”
그 집이 초가집처럼 허술해 보이기는 해도 그렇게 무드 있는 분위기에서 건축 허가 받았냐니! 내 눈엔 그런 집조차 낭만적으로 보이기만 하는구만.
부부는 한 30년 살면 얼굴도 식성도 비슷해지고 취향도 비슷해진다는데, 정말 달라도 이렇게 다르담!
결혼하기 전엔 우린 뭐든지 잘 맞았다.
연극 구경 가자! 오케이!
음악회 갈까? 오케이!
눈 많이 왔는데 덕수궁에 눈꽃 보러 가자! 오케이!
등산가자! 오케이!
그러던 것이 등산 가자! 다시 내려 올 걸 뭐하러 가, 잠이나 자자!
음악회 가자! 그 비싼 돈 내고 가서 잠 잘 일 있냐?
웬수의 잠, 잠, 잠. 그래서 연극도, 음악회도, 눈꽃도, 등산도 다 포기하고 산 세월이 30여년.
그래도 뭔가 좀 맞는 게 있긴 할 텐데…
우리 부부의 강의 제목에 이런 게 있다.
“우리는 맞는 게 없어!”
사실 이 말은 내가 남편에게 참 많이 하는 말이다. 진짜 맞는 게 없다. 그런데 남편은 “나는 대충 맞는데” 이렇게 맞 받는다.
나는 왜 맞지 않는 다고 하는데 남편은 대충 맞는다고 할까? 여자는 뭔가 부족을 느끼는데 남자는 둔감하고 대범(?) 해서일까?
진짜 이유는 한사람은 “나”이고 다른 한사람은 “너”이기 때문이다. 한사람은 “남자”이고 한사람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나와 너는 정말 다르다. 여자와 남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말하는 이유도 생각하는 방법도 다르다. 성격 차이도 많고 성 격차도 크다.
남자는 목표 지향적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여자에게 온갖 봉사를 다하고 사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최선을 다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갖은 창의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고 물 불 안 가리고 목숨까지도 걸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목표가 달성 되면 대부분의 남자는 또 다른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여자는 관계 지향적이다.
데이트 할 때는 낭만적인 여러 이벤트에 끌려 그런 것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또 결혼에 대해 좀 불안해하고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 한 후에는 더욱 안정된 관계를 바라게 된다. 소속감이 더 깊어지고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하게 된다. 남편이 나 아닌 다른 일에 매달리는 것을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하루에 약 7천 개 정도의 단어를 말하고 여자는 2만 2,3천개의 단어를 써야지만 정서적으로 만족한다고 한다. 퇴근한 남편에게 이러구 저러구 할라치면 남편은 대뜸 “빨리 빨리 말해. 그래 , 결론이 뭐야?”그런다
회사에서,거래처에서, 손님 만나면서, 이미 7천 단어를 다 소진하고 들어 왔으니 더 이상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나 아내는 아이들 돌보고 수퍼에 갔다 와도 한 3천 단어 밖에 못썼으니 아직 남아 있는 단어를 써야만 한다. 피곤해진 남편은 쉬고 싶은 마음밖에 없으니 아내 말에 친절한 대꾸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다. 서로 조금씩만 상대방을더 이해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몰라서 그렇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 다른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것을 틀린다고 우겨 대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사실 남편의 일터는 능력과 지식과 기술, 충성, 생산성, 경쟁, 논리적 사고, 완벽성등을요구 받고 있는 곳이다.
반면 가정은 사랑, 부드러움, 포용, 배려, 이해가 가득하여 육체적 정서적으로 휴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직장과 가정에서 요구하는 속성은 이처럼 다르다. 그런데 남자들은 직장에서 가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빠르지 않다. 어렵다. 이점을 아내는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사람끼리 엮어내는 가정생활이야 말로 예술중의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내들이여! 남편의 다름을 넓은 아량으로 포용하여 우리 가정을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빚어내는 금년 한해가 되기를 시도해 보자.
– 김영숙 가정문화원원장(yskim11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