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넝쿨째 굴러 온 당신 이란 연속극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너희 집 현관 비밀 번호가 뭐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시어머니들 사이에서 과연 그걸 물어야 하나 안 물어야 하나가 논쟁이 됐었다.
우리 아들 결혼 할 때도 함께 살자 말자 할 분위기가 아니라 첨부터 분가하는 걸 당연히 받아들였다. 분가를 해도 요즈음엔 오라 소리 안하면 불쑥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시어머니로서 젊은 애들이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내 아들 뭘 해 먹이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사실 딸네 집이나 며느리 집에 가면 새살림이라 반짝반짝하고 깔끔한 게 보기 좋았다. 그러다 내 집엘 오면 묵은 살림에 짝 안 맞는 그릇등을 보며 내심 나도 확 다 버리고 새거로 좀 사?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고, 얼마나 더 살겠다구 다 바꾸나 그러면서 궁상 떠는 내 모습이 싫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여기 저기 아픈 곳도 생긴다. 마음은 봄을 타고 몸은 가을을 탄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 며느리 한테 여기저기 몸 아프단 얘길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때 내 딸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 어머니는 맨날 아프대서 전화걸기 싫어.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하셔. 한번은 119불러 병원 가셨대서 허겁지겁 병원 갔는데 의사가 괜찮다고 하잖아. 그래서 한숨 돌리고 집에 왔지. 다음날 전화해서 퇴근하고 오라시는 거야. 엄마, 내가 놀아? 애 안 키워? 양치기 소년 같애. ”
그 이야기 들으니까 정신이 버쩍 났었다. 아, 내 며느리도 내가 징징 대면 이런 기분이겠다 싶었다. 나이가 들면 실제로 여기 저기 아픈 곳도 많아지고 정서적으로도 누군가와 더 많은 유대를 갖고 싶다. 내가 자꾸 잊혀질 것 같아 걱정도 많아진다.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바깥 활동에서도 자신감이 없어진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나이 칠십도 결코 노년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장년이라고 하잔다. 장년이면 아직 역할도 더 많고 스스로의 역할을 더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사는 사람은 누구랑 말 할 사람이 없어서 더 외롭겠지만 무언가를 하나 정해서 배우기도 해 보는 게 어떨까? 그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내 인생 내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혼자서도 잘해요 라는 말은 아이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장년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말이 되었다.
나는 이제 한 인간으로서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 대한 독립 만세가 아니라 “나” 독립 만세를 외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