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편이 어머니와 아내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힘들어 하고 있다. 아내 편을 들자니 어머니께 불효하는 것 같고 어머니 편을 들자니 나 하나 믿고 시집온 아내를 슬프게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동안 한국의 가정 문화는 가부장적 유교윤리가 지배했다. 부부는 유별하고 부자는 유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 사랑보다 어머니께 효도하는 것을 더 중하게 여겼다.
오죽하면 어머니는 한번 가시면 다시는 못 모시지만 아내는 또 다시 얻으면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있을까.
그런데 얼마 전 이제 막 결혼한 젊은 남편을 만났다.  이 젊은 남편에게 아내와 어머니가 갈등이 생기면 어찌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요? 어머니는 내가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모자 관계를 끊을 수 없지만  아내요? 아내는 한번 헤어지면 다시는 안돌아 와요. 그러니 아내를 꽉 잡아야 해요.”
젊은이의 생각이 이렇게 변했을까?
그 말이 참으로 그럴 듯하게 들렸다. 결혼 예비교육을 할 때 남편은 어떠한 경우에도 아내와 한 몸(한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남편은 아내와 결혼했고 어머니를 떠나(창세기 1장 24절) 새로 독립된 가구를 형성하고 새로운 가정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들이 그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참다운 효도다.
우선은 아내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배려해야한다. 그래서 아내가 감동하면 자연히 어머니를 존경하고 순종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남편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아내가 어찌 시어머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흔히 ‘효자 남편’과는 살기 힘들다고 한다. 추남은 용서해도 마마보이는 못 봐주겠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떠나지 못하므로 고부간 갈등이 생기고 부부가 하나 될 수 없으며 가정에 평안이 없다.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하며 사는 가정도 많지만 고부갈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이브의 장수 비결은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농담도 있다. 그래서 고부간 갈등 해결의 열쇠는 남편이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이 있을 때 서로 화해하도록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를 악화 시킬 수도 있다.
자녀들이여, 부모로부터 떠나라. 부모들이여, 자녀를 떠나보내라. 그리고 자녀로부터 떠나라.
자녀도 심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모로부터 떠나야 하지만 부모도 자녀로부터 떠나야 한다. 한집에 살거나 옆집에 살아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살면서도 떠나지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며느리와 지나치게 밀착된 아들이 얄미울지라도 어머니는 아들며느리 사이에 끼어들 것이 아니라 옆으로 비켜서 있으면 아들 내외도 우리 내외가 그랬던 것처럼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지지고 볶으며 자기들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