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학생들은 학번으로 얘기한다. 나도 정신여중을 입학한 것을 학번으로 말한다면 57학번 쯤에 해당한다. 정신에서 6년을 보내며 믿음, 인격, 희생적 봉사, 생각, 행동 ,염치와 교양, 성경까지 배웠으니 내 모든 인격형성의 기본을 다 익혔음이 틀림없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을 보면 그렇다. 나는 안양교도소 교정위원으로 30년간 봉사 하고 있으며 서울 가정 법원 가사 조정위원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몸소 본을 보이신 정신의 선생님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복도에 껌이 붙은 것을 보시고 머리핀을 뽑아 쪼그려 앉으셔서 떼어 내시던 김필례 선생님의 수범, 지나가던 우리들이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서 함께 쪼그려 앉았었고 다시는 아무데나 껌 뱉는 일은 하지 않았던 우리들.
한국의 다음세대를 위한 어머니들이 될 여학생들이니 최첨단을 경험하고 사용해 보아야한다시며 수세식 변기를 설치 하셨던 선견, 튼튼한 몸이 경쟁력이라시며 누구에게나 운동부 가입을 권하셨던 선생님, 덕분에 나도 탁구 선수로 전국 체전에서 단체전 우승을 하기도 했다.
최고의 교사진으로 우리의 학습 능력을 높은 수준으로 올려 준 학교. 특히 영어교육을 위해 좋은 선생님 좋은 시설을 만들어 주셨다. 웬만한 학교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Booth가 있는 영어 Lab을 만들어 자기 발음 들으며 교정하게 하셨던 일
지금도 그 때 배운 영어가 기초가 되어 나는 교도소에서 영어 선생을 하고 있다. 고3 시절의 실력만 있어도 지금 펄펄 날겠지만 다 잃어버린 기억력을 한탄할 뿐이다. 그 때 불렀던 영어 노래, 외었던 윌리엄 워즈 워드의 시들이 나를 아직도 으쓱하게 한다.
그 실력(?)으로 안양교도소에서 30년 째 가르친다. 교재가 영어 성경이어서 영어 선생이다. 내가 가르치는 반은 고시 반이다. 초, 중 고 대학 과정이 다함께 있다. 중입 고입, 대입 검정 고시반 그리고 학사반 까지. 학력차이도 다양하다. 중입 검정고시를 준비해서 초등학교 졸업자격을 금방 딴 사람부터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석사출신까지.
그래서 더 감동이 있는 수업을 할 수 있다. 영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 공부 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존중하며 사랑하도록 하는 수업이 주를 이룬다.
이제 막 자기 이름을 영어로 처음 익혔다고 감격하며 교도소에서 중졸 고졸 시험에 꼭 패스하겠다고 결심하는 그는 40대 후반이다. 또 선생인 내가 영어에 막혀서 질문하면 척척 대답해 주는 석사출신의 그도 똑 같은 내 제자이다. 아마 나는 전과자 제자를 가장 많이 둔 선생일 것이다. 자기 표현이 서툴고 자기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를 수 있는 그들에게 자기표현을 위해 3분 스피치를 훈련시키고 영시를 외우게 하고 영어 노래를 부르게 한다. 영어로 된 속담도 외운다. 주기도문도 영어로, 시편 1편도 시편 23편도 영어로 외우게 한다. 선생도 외우냐고? 선생은 이제 늙어서 기억력 없다고 안 외우고 버틴다. ㅎㅎ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그는 부정 수표 단속법으로 4년이나 그곳에 있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미국에 갔다고 얘기했다. 출소 후 아빠를 반기는 아들, 아빠는 미국 갔다 왔으니 영어를 잘 할 거 아냐? 영어 해 봐! 하는 아들에게 시편 1편과 23편을 줄줄 외웠다. 와! 아빠 진짜 미국 갔다 온 거 맞구나! 이런 감동적인 얘기를 누가 들을 수 있을까? 정신에서 영어 배운 나니까 하지. (으쓱)
“선생님이 ‘가르친 보람있는 제자’가 되겠다.” 는 결심을 보여준 제자, 용기를 얻고 희망을 배우고, 마침내 메마른 가슴에 따뜻한 사랑을 꿈나무처럼 간직하겠다는 제자.
그들에게 아직도 ‘사랑하는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손으로 쓴 편지를 받을 수 있는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정신의 이름으로 같은 교훈을 받으며 삶의 기초를 쌓았던 우리 동문들! 살아있는 동안 영원히 현직의 삶을 살 우리 동문들!
빛나라 ! 정신 동문들! 힘내라! 우리 동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