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로써 어떻게 해야할지..
05.10.28 10:08
학생
저희집은 겉보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다복한 가정입니다. 회사중역이신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똑똑하고 착한 딸과 아들.. 교회에서도 군대간 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달란트대로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늘 우리가족을 부러워합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해요. 예전부터 아빠는 늘 무심하셨고, 엄마는 아빠께 온 신경을 다 쓰셨어요. 게다가 아빠는 제가 고3일 무렵부터 한동안 외도를 하셨고 그것때문에 엄마가 큰 충격을 받으셨어요. 물론 엄마가 끝까지 참으시고 아빠도 (다른 가족한테는 감사하게도) 일이 꼬이시는 바람에 그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그치만 아빠는 별로 반성하신 것 같지 않아요. 예전이랑 별로 다를 바 없으세요. 배신감과 상처를 받으신 엄마는 달리 마음속의 얘기를 털어놓을 곳도 없으셔서 이해받고 싶으신 마음에 저한테 아빠에 대한 얘기를 하세요. 물론 부모의 문제를 자녀에게 얘기한다는 것이 좋지않은 일이란걸 엄마도 아시지만 어쩔 수 없으셨죠.
엄마가 지나치게 예민하신 반면 아빠는 무심하세요. 그냥 매사에 하고싶은대로 하시죠. 집에오면 TV나 보시고 문닫고 방안에서 컴퓨터를 하시고 가족들하고보다는 혼자 움직이시는걸 좋아하세요. 골프여행도 맘대로 다니시구요. 엄마가 싫어하는 일을 거의 다 하실걸요. 엄마가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는 담배끊기역시 가볍게 어기셨어요. 눈앞에서만 안피시죠. 엄마는 건강하지 않으시고 아빠는 지나치게 건강하시다는 점도 엄마에겐 스트레스에요. 아빠도 엄마가 아픈건 싫어하시구요. 여하튼 뭐하나 잘 들어맞는게 없으세요.
저는 처음에는 아빠가 너무 밉고 싫었어요. 그렇지만 싫어할래도 싫어할 수가 없어요. 제 아빠신걸요. 그래서 엄마에 대해서도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엄마가 얘기할 때 마냥 맞장구를 쳐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봐야 무슨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엄마는 매번 대화할 때마다 결국 아빠얘기를 꺼내셨어요. 벌써 몇년 째요. 전 엄마도 이해하지만 들어드리는 일도 한계에 다다랐어요. 솔직히 이제는 부모님의 문제를 알고싶지도 듣고싶지도 않음에도 자녀인 저에게 계속해서 말하는 엄마가 화가나요. 눈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은혜받고 내적치유 세미나에서 상처를 찾아 치유하고, 책을 통해 문제점을 깨닫고.. 엄마는 매번 이제는 달라졌다고 아빠를 용서했다고 하시지만 아빠와 엄마의 트러블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저에게 얘기하시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저도 성격이 많이 나빠졌어요. 부모님께 신경질도 내고 반박도 잘 해요. 사실 두분께 많이 섭섭해요. 아빠한테 가족이란 장식용에 불과한 것 같고, 엄마한테 딸이란 맘대로 대해도 되는 대상밖에 안되는 것 같아요. 엄마는 제가 늘 엄마를 이해하려들지 않고 제 방어만 하려고 한다고 섭섭해 하고 화를 내세요. 아빠편만 든다고 하시구요. 그치만 전 더이상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기조차 싫어요. 이젠 거의 될대로 되라는 마음에 엄마한테 짜증을 내요. 그만좀 하라고.. 저도 해야할 일이 많아요. 고시생이거든요. 아예 밖에 나가서 살까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지만, 그래도 집보다 편하고 돈 안드는 곳이 없으니 그냥 있어요. 전 엄마가 인삼삶아다 주고 피곤할까봐 빨리 자라고 하는 대신 제가 공부 외의 일에 신경쓰지 않게 보호하고 배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더 마음상하실까봐 차마 생각나는 말들을 못할 때가 많아요. 참다참다 못해 하는 말들만 해도 엄마를 아프게 하고 저도 모진 애가 되는걸요.
동생도 그다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에요. 중3때부터 시작된 사춘기는 그칠줄을 모르고 대학에서도 무계획적으로 사는 바람에 성적도 꽝이고 돈도 어이없는 곳에 많이 날렸어요. 제맘대로 방값빼서 오토바이사고, 우왕좌왕하다가 쓸 데 없는데 돈들이고.. 군대간 지금도 전화하면 신경질만 내요. 후임들이 일을 못해서 자기가 다 해야하고 그래서 제대로 못하니 혼이 많이난대요. 휴가로 집에 와도 꼭 갈때는 엄마와 한바탕 싸우고 가요. 마음도 여리고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이 그애에게 맞는 보살핌을 못해주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와 제 생각에요.
우와.. 너무 길게 썼네요. 죄송해요. 마음에 담겨있는 말은 너무 많지만 이정도도 글로는 너무 기네요. 사실 쓰다가 엄마한테 들켰어요. 민망하기도 하고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누군가에게 제 맘을 털어놓으니 좀 낫네요. 아까는 엄마가 또 아빠얘기하시는 바람에 서로 신경질을 부렸거든요. 이대로 가다가는 말그대로 돌아버릴 것 같아요.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제가 우리 가족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요.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도 싫어요. 더 비참해질 거에요. 가끔 아무도 저를 진심으로 생각하거나 제 말에 귀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바보같은 생각이겠지만 자꾸만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싶어져요. 그냥..제가 어떻게 해야 이런 끔찍하고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고싶어요. 그리고 딸로써 부모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요.
아버지학교나 어머니학교는 있는데 왜 자녀학교는 없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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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딸로써 어떻게 해야할지..
-05.11.01 13:55
가정문화원 HIT 547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군요.
학생의 가정도 대부분의 한국가정들과 비슷해요.
무심한 아버지와 예민한 엄마, 돈만 벌어다 주면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엄마가 뭐라 하면 “배가 불렀군.” 이 한마디로 제압해 버리는 아빠.
엄마(여자)는 배만 부르다고 행복한 존재가 아니지요. 끊임없이 감정을 존중 받아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니 늘 불행감이 들구요.
아마 학생의 어머니도 다른 사람들에게 아빠 불평을 할 수 없으실 꺼예요.
그러니 딸에게 라도 감정을 이해 받고 싶어 얘기 하실 꺼예요.
그러나 좋은 소리도 한 두 번 인데 듣고 싶지 않은 똑 같은 소리를 듣는 건 고역일 꺼예요.
이해해요.
그렇게라도 하셨기에, 들어 주는 딸이라도 있기에, 친구 같은 딸이 있기에 엄마는 버티고 계신지도 몰라요.
엄마한테 “그렇겠구나.” “힘들었겠구나.” “속상하겠구나.” 하면서 맞장구를 쳐드리고 엄마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세요.
그렇지만 엄마와 감정적으로 좀 독립할 필요가 있어요. 엄마가 상처 받을 까봐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상처가 좀 되더라도 엄마에게 “나 엄마 얘기 다 듣긴 힘들거든요. 그리고 아빠 흉 너무 많이 보는 것도요. 미안해요.”라고 말해 보세요.
학생의 말을 들으니 정말 자녀학교도 있어야 겠군요.^^*
부모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자녀를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