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동을 하는 스포츠 센터에는 매달 각종 명품잡지(명품의 잡지가 아니라 명품을 소개하는)들이 누구나 가져 갈 수 있도록 몇 가지 씩 잔뜩 쌓여 있다. 첨엔 잡지 외양이 너무 멋지고 근사해서 그 무거운 것들을 집으로 들고 와 보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 졌다. 멋진 모델들이 근사하게 입고 들고 바르고 손목에 차고 있는 것들을 보면 멋있어 보이긴 하다. 그런데 내가 했을 때도 똑같을 라나? 명품 소개 글들은 토씨만 빼고는 다 외국어로 쓰여 있어 나는 이해도 못하는 말들도 있다. 그래야 멋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침마다 배달되는 일간지들도 이런 류의 잡지에 뛰어든 것 같다. 내가 제일 즐겁게 그리고 느긋하게 보는 조간 신문들도 첫 페이지부터 온통 명품으로 옷 입고 있다. 아예 일주일에 한번 씩은 명품 광고잡지로 발 간 된다. 옛날에 미국 잡지를 드려다 볼 때의 느낌이 나는 재질이 낭창 낭창한 종이로 만든 이 잡지들은 작심하고 럭셔리 명품들을 쏟아낸다.

그것을 가질 수준이 안 됨을 열등감처럼 갖게 될 때도 있고 이렇게 쏟아내는 신문을 그만 끊어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피식)
명품을 갖지 않은 당신은 이류 인간이야 하는 메시지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마 완전 자격지심일 것이다.
명품 마케팅은 그것을 가진 사람을 “으쓱하게 만드는 기분”을 파는 거라든가?
왜 으쓱할 일이 명품 치장 뿐 일까? 왜 젊은 여성들은 한 달 치 월급을 기꺼이 털어 그 가방을 메야만 할까?
“좋은 게 정말 좋더라.” 일까?
명품은 귀족 계급이 사라진 현대에 타인과 구별되고 싶은 사람들의 로망이다.
아무리 경제가 나쁘고 금융위기가 있다해도 명품시장은 살아나고 계속 커진다고 한다. 명품으로 ‘나는 당신과는 다른 사람이야’ 하는 자부심을 갖게 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학생들까지 유명 브랜드 점퍼를 입어야 인정받고 대접 받는다고 한다. 돋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은 낮은 자존감에 기인 할까?
그러나 명품이 인격까지 높여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겸손하고 단정한 차림새야 말로 진정한 명품이 아니까 싶다.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다 똑같아지는 진흙 같은 인생인데, 더불어 살며 나누며 기부하며 “으쓱하는 기분”으로 낡아지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내가 지닌 물건은 명품이 아니지만 내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명품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