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이던 그때 나는 웬일인지 해가 가기 전에 결혼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기에 꼭 예수 믿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수 믿는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지금도 예수 믿는 총각이 흔치 않은데 그때는 말 할 것도 없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다. 키가 달렁하니 큰데다가 내 타잎이 아니어서 벼로 내키진 않았지만 예수를 잘 믿는다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나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이고 활발한 그가 참 좋아보였다. 아 이사람이랑 결혼하면 참 잘 맞고 행복하겠다 생각하고 만난 지 80일 만에 덜컥 결혼을 했다. 그러나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이 깨어지는 데는 이틀이 넘지 않았다. 결혼 하면 남자 들이 변한다고 하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그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완전 자기중심적이고 가부장 적이며 불 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 결코 참아주지도 않았다.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여자가 하는 일이 왜 그 모양이야. 여자가 웬 말이 그렇게 많아.” 등등 내가 하는 일이 못 마땅하면 “여자가 …” 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말을 들어도 대꾸하거나 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너무 무서웠다. 우리 때는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된다던 전설이 있던 때라 무조건 참고 참고 또 참았다. 너무 거칠게 말 할 때는 “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남편의 말을 한 번에 무찌를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아내인 나에게 큰 상처 였다.
대게 남편들은 그렇듯 아내의 상처에 무심하다.
A여사는 결혼 하고 15-6년 동안, 남편에게 말대꾸를 한다든지 눈 똑바로 뜨고 대드는 것은 못하고 살았다. 남편의 고압적인 태도와 말투에 무섭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았지만 부부 싸움 같은 것은 할 생각조차 못했다. 부부싸움 안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소심해 지고 자신감이 없었으며 주눅이 들어있었다. 표정도 어두웠다. 그러면서도 속마음은 폭발할 것 같았다. 마침내 아내는 반격하기로 작정했다.
“까짓것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거지.”
드디어 부부싸움을 한번 신나게 했다. 힘껏 소리치고 울고불고 했다.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다 풀려버린 느낌이었다. 지구가 도는 것을 멈추지도 않았고 세상이 뒤집어지지도 않았다. 놀란 남편 뒤에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아이고 시원해라.” 그 후부터 마음속의 상처와 조바심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존감도 조금씩 살아났다.
얼마 전 신문에 조그만 기사가 하나 실렸다.
미국 보스톤 소재 이커 연구소가 지난 10년간 주민 3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참고 지내는 아내가 남편과 싸우는 아내보다 심장병등 각종 질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4배나 높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또 칼리포니아 대학의 한 심리학자는 암이 생기기 쉬운 성격이 있다고 했다. 불평을 하지 않고 협조적이며 자기 감정 특히 분노, 적개심 같은 감정을 숨기고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했다. 절망적 상황, 우울, 분노의 상태가 지속 될 때 암 발병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홀몬인 코티솔의 수치가 높아지고 면역력이 억제 된다고 한다. 어떤 결혼 생활하느냐가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아내의 건강을 생각하는 남편이라면 아내가 종종 말싸움을 걸어와도 받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서로 사랑하세요. 먼저 배려하세요. 용서하세요. 참으세요.” 말은 쉽지만 잘 참아지지도, 배려도 이해도 잘 안 된다.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묵상하면(고후 2:10) 용서 못할 바도 없건만 용서는커녕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도 친절한 내 남편도 내게만은 참지 않고 하고 싶은 말도 막 해서 상처를 준다. “여자가 웬 말이 많아. 당신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예수 잘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갈등도 없고 부부 싸움 같은 건 절대로 안 하고 배려와 용서와 사랑만 있을 줄 알았다. 뜨겁게 기도하며 헌신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살 거라고 기대했다. 대학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던 나는 결혼할 때가 되자 예수 잘 믿는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그때 묵상한 말씀이 잠언 19장 14절이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슬기로운 배우자는 여호와께서 주신다는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소개받았던 이 남자는 첫 만남에서부터 신앙 얘기를 나누었는데 공감도 잘되고 무척 잘 통했다.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한 나에 비해 그는 외향적이고 유쾌하고 결단력도 있어 보였다. 게다가 나를 배려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것이 멋있고 믿음직스러웠다. 이런 사람 만나기 쉽지 않겠다 싶어 만난 지 80일 만에 결혼을 했다. 25세 때였다.
그러나 행복하리라는 꿈은 신혼여행 첫날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에서 그는 귤을 사더니 나한테 눈길 한번 안주고 혼자 다 까먹었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안내하는 분에게 “아저씨, 이곳은 땅이 한 평에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아니 우리가 신혼여행 왔지 땅 사러 왔어요?” 하며 대판 싸웠다. 정말 낭만도 없고 신부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오히려 자기가 더 화를 내고 큰소리를 쳤다.
신혼 때 남편 별명이 ‘먹고 가, 자고 가’였다. 손님을 한번에 20~30명씩 데리고 왔다. 아내의 사정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그래도 남편은 ‘나 같은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하며 큰소리쳤다. 속으로 ‘살아, 말아’를 수없이 되뇌었지만 무조건 참고 살았다.
마침 김인수 박사 부부가 개최하는 부부 세미나에 초청을 받았다. 우리 부부를 강사로 세우려는 의도도 있다고 하셨다. 남편은 “그런 곳은 문제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지 우리는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데 왜 가냐”라며 안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알아요? 배울 만한 것이 있을지.” 이 세미나야 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나는 강의를 들으며 설움이 북받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렀다. 엄마 노릇, 아내 노릇이 서러웠다. 공격적인 말투, 급한 다혈질의 성격, 냉정함, 말마다 아내를 무시하는 태도, 이런 것들이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남편은 당황하고 민망해했다. 강의를 들으며 남편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회복의 시작이었다. 할렐루야!
그 후 우리 부부는 CCC의 가정 사역 프로그램인 ‘패밀리 라이프’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강의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부부란 참 이상하다. 당장 헤어질 듯 갈등하다가도 조금만 배려하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면 눈 녹듯이 풀어지는 걸 너무도 많이 봤다. 엉킨 실타래 같아도 실마리만 잘 찾으면 의외로 잘 풀린다. 부부는 갈등도 하고 싸움도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고 서툴러서 그렇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가정의 행복을 만드는 기술은 작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말할 때 목소리에서 힘만 조금 빼고, 얼굴 표정만 부드럽게 해도 부부 갈등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잠 15:1). 순한 말은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평안함을 준다. ‘괜찮아, 여보. 당신 생각대로 한번 해 봐요.’ ‘알았어.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 ‘여보, 당신 정말 예뻐. 누가 당신을 아줌마라고 하겠어.’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부부 행복도 연습이고 훈련이고 기술이고 습관이다. (월간 플러스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