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남편의 고향이어서 그곳에서 강의 요청이오면 어떻게라도 시간을 낸다. 그날 강의를 하면서 우리 부부가 얼마나 다른가를 얘기하는 중에 남편은 자기는 맛깔스러운 젓갈이나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는데 아내의 음식은 밍밍하고 닝닝해서 도무지 맛이 없단다. 나는 내 음식이 시원하고 깔끔하고 담백하다고 맞받았다. 내 남편이 말한다. 그건 서울식 표현이고 사실은 음식이 맛대가리가 없다고.
강의가 끝난 후 한 권사님이 내게 오시더니
“제가 어제 김장을 했거든요. 좀 드려도 될까요? 아주 맛있게 담궜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주시면 고맙게 먹겠습니다.” “새우젓도 제가 봄에 담근 것을 썼고요, 들깨죽도 쑤어서 넣었어요. 정성껏 만들어서 맛있을 겁니다. 그리고 고향 음식이어서 장로님 입맛에도 맞을 꺼예요.”
“몇 백 포기 담궜어요. 여기저기 나누고 싶은 데가 많아서요.”
오! 김치를 이렇게 많이 담아 여기 저기 나누시겠다는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한통 가득 차에 실어주셔서 김장도 못한 나는 이만큼으로도 겨울 반 양식은 될터이다.
젊었을 땐 나도 김장 잔뜩해서 마당에 묻어놓고 맛있다는 사람들에게 퍼 돌리곤 했는데 이젠 두 식구에 뭘 그리 많이 먹는다고 한담. 했었다.
권사님은 적지 않은 나이에 자기의 수고를 통해 여기저기 나누시다니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것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아마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바쁘게 강의를 다니고 상담도 하고 그러느라 밖에서 밥 먹을 일이 많다는 핑계로 음식하는 일에 소홀히 한 점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나도 어느덧 남편의 입맛에 대충 맞추어서 돼지고기로 국도 끓이고 젓갈도 이것저것 사다가 상에 올리기도 한다. (아직도 멸치젓 냄새에 적응을 못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웬일인지 남편은 점점 더 옛날 고향에서 먹었던 그리운 맛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 어머니가 해주셨다는 찡한 동치미라던가 돼지고기를 된장에 박았다가 국을 끓여 주시면 한 사발 씩 먹었다는 것들을 . 아마 나이가 들면 더욱 그리운 것이 어머니의 손맛이겠지.
나도 외할머니댁에서 어릴 적 먹었던 모시조개 매운탕 맛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 흉내 내 보지만 결코 그 맛이 아니다. 아마 음식은 추억인가보다. 기억인가 보다.
집에 돌아와 권사님이 주신 김치를 포기 머리만 딱 자르고 죽죽 찢어서 아직 생김치 인 것을 일부러 지은 하얀 쌀밥에 척척 걸쳐 정말 맛나게 먹었다. 남편은 고향 맛이라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렇게 얻어 먹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큰 은혜이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가정문화원 원장 김영숙( yskim1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