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자녀 키우기는 정말 만만치 않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게 만든다.
예전에는 ‘저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아이는 자라서 훌륭한 한 일꾼이 되어 가계를 세우고 집안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요즘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런 소리 마세요. 그건 다 옛날 얘기예요. 지금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예요. 아이 키우는 것도 집중과 선택이 필요해요’라고 말한다. ‘누군들 아이 많이 낳아 훌륭하게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회가 그렇게 할 수 없게 만들잖아요?’ 한숨 섞인 토로를 한다.
지금은 아이가 태어나면 큰 소비자가 하나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신문도 앞 다투어 아이 하나 키워 사람 구실하게 될 때까지 수억의 돈이 든다고 보도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어도 겁부터 나고 자신이 없어진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반드시 돈으로만 환산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로 인한 기쁨과 보람, 행복과 사랑은 무엇으로도 환산 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로 인해 부모도 인간이 되어가지 않던가.
자녀를 하나 키울 때와 둘 일 때의 기쁨이 다르며 세 아이일 경우 힘들고 어렵고 괴로움도 크지만 자녀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인생의 보람이다. 얼마 전 방송에 못 말리는 ‘닭살 부부’들이 나와서 금슬을 자랑했다. 그런데 부부 나이의 많고 적음, 결혼 연차를 떠나 공교롭게도 이들 부부 모두 자녀가 세명 이상이었다.
전래 동화 나무꾼과 선녀, 노총각 나무꾼에게 사슴이 말했다. 사슴은 선녀가 목욕하러 내려 올 때 선녀의 옷을 감추라고 했다. 그러면 옷이 없어진 선녀는 하늘에 못 올라가고 당신하고 결혼하게 될 것이다. 아이 셋을 낳을 때 까지는 절대로 선녀에게 옷을 주면 안된다고 당부했다. 두 아이를 낳고 너무 행복한 나무꾼은 아내는 절대 변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선녀에게 그만 옷을 주고 말았다. 선녀는 두 아이를 오른팔 왼팔에 하나씩 안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아이가 셋이었다면 아이를 안을 팔이 없어 못 올라가지 않았을까? 글쎄다.
최근 한 보도에 의하면 아이가 없는 부부의 이혼율은 %로 가장 높고 아이가 하나인 경우는 %, 아이가 둘인 경우는 %, 아이가 셋 이상인 경우는 6%였다고 한다.
아이는 부부 사이에 본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아이로 인해 싸움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아이에게 집중하는 사이 부부관계가 소원해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의 결점에 대해 좀 무심해 질 수 있고 너그러워 지기도 한다. 아이 양육을 위한 동반자로서의 자각과 책임이 더해져 아내와 남편의 결속을 돕는다.
얼마 전 직장생활을 하면서 세 번째 늦둥이를 낳은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보면 힘이나요. 아이들이 내게는 힘의 원천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