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은 안다. 손자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게다가 다 키워 놓으면 제 에미찾아가고 쓸쓸함만 남기니 다 쓸데 없다고.
우리 교회 K 권사님은 일하는 며느리를 대신해서 손자 둘을 키우고 있다. 사내애들 둘을 키우느라 진이 다 빠지고 안 아픈 곳이 없다고 말씀하곤 했다.
“권사님, 권사님이 키우는 아이는 내 손자만이 아니예요. 세계적인 기여를 할 인물을 키우는 굉장한 일을 하시는 거예요. 마당을 쓸어도 내 마당이 아니라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하는 일도 의미가 생기구요.”
이 말에 힘을 얻으신 권사님은 나를 볼 때 마다 자기가 키우고 있는 손자가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사람으로 크는 것을 마음에 품었더니 너무 좋아요. 하며 흐뭇해 하신다.
나도 내 아이들을 결혼시키기 전에는
“난 손자 안 봐 줄 꺼예요. 내 아이 키운 것 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어요.”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일하는 딸이 아이 낳고 힘들어 하니 안 봐 줄 수도 없었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이로 인해 집안은 활기가 넘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육아는 힘들다.” “육아는 재미있다.” “육아는 보람있는 일이다.”
능력있는 할머니가 육아도 잘 한다.
능력이란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손자녀를 내 방식으로 생각하며 키우는 것이다.
내 아이 키울 때 미쳐 보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힘이 들 땐 야단도 치지만 그래도 너그럽고 부드럽게 대하는 여유도 있고 나름의 지혜로 아이를 편안하게 해 줄 수도 있고 나름 즐길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된다.
손주는 왜 예쁠까? 친구들이 말했다. 책임감이 없으니까.
이번 여름에도 거의 석 달을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조용해서 방문을 열면 닌텐도에 빠진 녀석이 후다닥 감춘다. 그 모습이 밉지 않다.
‘아주 교활하구만, 그래야지 좀 교활한 끼도 있어야지. 금방 야단맞을 줄 알면서도 감추지 않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
내 아이를 키울 때 였다면 야단치고 혼내고 못하게 했을 터.
제 엄마는 절대 안 사주는 콜라도 더러 사준다. 왜? 내 아들이 아니니까.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할머니의 너그러움이 아이를 여유있고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훌륭한 인재를 키우는 막중한 일을, 아주 의미 있는 일을 힘들고 고단하지만 잘 해내고 있음이 감사하다.
만약 할머니가 양육을 감당하겠다고 한다면 아마 며느리와 딸들이 아이를 더 낳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야말로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하는 셈이다.
손자를 키우시는 할머니들이여 !
당신은 지금 다음세대를 위한 아주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할머니 육아시대. 부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