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인이는 서울에 오더니 조금씩 우리말을 잘 하기 시작 했다. 그런데 정말 헛갈려 하는 것이 존대어다.
내가 “다인아, 이리와.”하고 불렀더니 나를 부를 때 끝에 “세요.”를 붙여 “이리 와세요.” 한다. 뿐만 아니다. 어른들에게는 “안녕히 주무세요.” 하는 거야 라고 가르쳤더니 그럼 아이들한테는 “안녕히 주무.” 하느냔다. 제 딴엔 “세요.”가 존칭 어미 인 것 같으니까 “세요.” 를 빼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말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존대어는 보통말과 전혀 다르다. “잘자” 와 “안녕히 주무세요” “밥 먹어라” “진지 잡수세요.” 글자 상으로 보면 비슷한 게 없다.
“안녕히 다녀 오셨어요?” 도 번번히 틀린다. 잘 안되면 “하이.” 해 버린다.
다인이도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엔 집에서 우리 말만 했다. 온 식구가 다 한국말을 하니 당연하다. 그러더니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영어하는 것에 엄청 스트레스 받았다. 유치원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점심도 못 얻어먹고 얼굴에 눈물로 앙괭이를 그리고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밥을 먹더란다. 너무 안스러웠다고 제어미가 전해주었다.
그러던 다인이가 점점 영어를 편하게 하고 아무리 한국말로 하라고 다그쳐도 잘 안되더란다. 엄마는 한국어로 하고 애는 영어로 대답한단다. 그러다가 여름 방학에 서울에를 왔는데 처음엔 듣기만 하더니 좀 지나니까 생각이 나는지 거의 정확하게 말을 했다. 그런데 존대어에서 자주 막힌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하는 존칭에서 헛갈리기는 하지만 아마도 익숙해 지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 초창기 부모들은 아이들이 빨리 적응하고 익숙해지도록 영어만 쓰게 했다던데 지금은 한국말 잘 하는 것도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에서 한국말 가르치려고 열심이다.
교회들도 주말에 한국학교를 운영해서 관심있는 부모들은 열심히 가르친다. 그런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여름 방학 때 한국에 와서 우리말을 체계적으로 배울 곳을 찾지 못해서 그냥 집에서 말을 가르치는 정도다. 만약 그런 곳이 있어서 우리 말도 가르치고 우리 역사도 좀 가르치며 문화도 가르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어려서 두 달 반 정도의 한국 생활을 한다면 잊었던(?) 한국어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름방학기간을 정말 알차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지하철 타고 인사동도 가고 여기저기 다니며 서울 자랑도 했다. 보여 줄 것도 많고 가르쳐 주고 싶은 것도 많았다. 방학 때 서울에 온 손자를 돌보면서 힘도 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과 뿌리 의식을 심어줄 수 있어 보람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