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행복강의를 하는 내게 친구가 물었다.
“너희 부부는 강의하는 대로 사니?”
“아니, 사는 대로 강의해.”
부부행복이라는 게 어디 이론처럼 되던가? 그러니 이론이 아닌 ‘사는 대로’의 강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는 대로’의 강의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우리 부부만 엄청 잘못 살고 있고 갈등도 심하고 내 아내만 혹은 내 남편만 별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부부는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틀렸다 하니 갈등이 된다.
다 알면서도 이론처럼 되지 않는 것이 부부관계다.
“서로 사랑하세요, 먼저 이해하세요. 배려하세요. 용서하세요. 참으세요.”
그런데 잘 참아지지도, 배려도 용서도 잘 안 된다. 이해는 커녕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도 친절한 내 남편도 나에게만은 참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도 막 해서 상처를 준다.
“여자가 웬 말이 많아. 당신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하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런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예수 잘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갈등도 없고 부부싸움 같은 건 절대로 안하고 배려와 용서와 이해와 사랑만 있을 줄 알았다. 뜨겁게 기도하며 헌신하며 순수한 믿음으로만 살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학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던 나는 결혼 할 때가 되자 예수 잘 믿는 남자 만나게 해달라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소개받았던 이 남자는
첫 만남에서 신앙얘기를 나누었는데 너무 공감도 잘되고 호흡이 맞고 잘 통했다. 내성적이고 뜨뜻미지근하고 우유부단한 나에 비해 그는 외향적이고 유쾌하고 결단력도 있어 보였다. 게다가 나를 배려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것이 참으로 멋있고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이런 사람 만나기 쉽지 않겠다 싶어 만난 지 80일 만에 결혼을 했다. 25살 때였다. 그러나 행복하리라는 꿈은 신혼여행 첫날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에서 그는 귤을 사더니 나한테 눈길 한번 안주고 혼자 다 까먹었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안내하는 분에게 “아저씨, 이곳은 땅이 한 평에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혔다.
“아니 우리가 신혼여행 왔지 땅 사러 왔어요?” 하며 대판 싸웠다.
정말 낭만도 없고 신부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기가 더 화를 내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자기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태연히 말했다.
신혼 때 남편 별명이 ‘먹고가, 자고가’였다. 손님을 한번에 20~30명씩 데리고 왔다. 아내의 사정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그래도 남편은 ‘나 같은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하면서 큰 소리쳤다. 나는 갈등이 너무 많았다. 속으로 ‘살아 말아’를 수없이 되뇌었지만 결혼 하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한다는 것 때문에 무조건 참고 살았다.
마침 김인수 박사부부가 개최하는 부부세미나에 초청을 받았다. 우리 부부를 강사시키려는 의도도 있다고 하셨다. 남편은 ‘그런데는 문제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지 우리는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데 왜 가느냐’며 안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알아요? 배울 만한 것이 있을지.’ 남편은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강의를 들으며 설움이 북받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부끄러울 정도로 통곡했다. 정말 아내노릇 엄마 노릇이 서러웠다. 공격적이고 명령하는 듯한 말투, 급한 다혈질의 성격, 냉정함, 말마다 아내를 무시하는 태도, 이런 것들이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남편은 당황하고 민망해 했다. 강의를 들으며 남편도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회복의 시작이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미국의 가정 사역 프로그램인 ‘패밀리 라이프’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행복한 가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각각 남편, 아내의 입장에서 주장도 하고, 옹호도 하며 공격도 하고, 변호도 한다. 비난하고 잔소리하고 싶을 때 “나는 당신이 일찍 들어와서 아이와 놀아 줄때 감사해.” 라고 감정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도록 애썼다. 마음에는 없더라도 칭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이란 긍정적으로 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말이 씨가 되는 것이다. 부부란 참 이상하다. 당장 헤어질 듯 갈등하다가도 조금만 배려하고 이해하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면 눈 녹듯이 풀어지는 걸 너무도 많이 봤다. 엉킨 실타래 같아도 실마리만 잘 찾으면 의외로 잘 풀린다. 부부는 갈등도 하고 싸움도 한다.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고 미숙하고 서툴러서 그렇지 나빠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가정의 행복을 만드는 기술은 작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말할 때 목소리에서 힘만 조금 빼고, 얼굴 표정만 부드럽게 해도 부부 갈등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순한 말은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평안함을 준다.
‘괜찮아, 여보. 당신 생각대로 한번 해 봐요.’
‘알았어.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
‘여보, 당신 정말 예뻐. 누가 당신을 아줌마라고 하겠어.’
‘너 정말 짱이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행복도 연습이고 훈련이고 기술이고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