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마루에서 미끄러져 벌러덩 자빠진 것이 하필이면 테이블 모서리에 등과 옆구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숨도 안 쉬어지고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머릿속이 하예지면서 큰일이다 싶었다.

앉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안됐다. 누웠다 일어나는 일은 참으로 난감했다. 이리저리 몸을 굴려 양팔을 바닥에 대고 엉금엉금 기어 몸을 만들어야 했다. 병원에서 X-Ray 를 찍어보니 다행히 갈비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4-5주 걸린다고 하니 어쩌나 싶었다.

밥도 먹어야 하고 집안일도 쌓여가니 여간 답답하지가 않다.
이럴 때 남편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집안일을 돕기는커녕 자기가 해야 할 일이나 좀 잘했으면 좋겠다. 신문 읽고 접어 치운 적 없고 양말도 벗은 그 자리다. 잔소리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앞으로도 안 바뀔꺼니까 내가 우물우물 살살 달팽이처럼 굼뜨게 움직이며 마루에 깔린 신문을 집어 재활용 박스에 넣고 양말을 집어 빨래 바구니에 넣는다. 잔소리 회유 다 안 되니 내 몸이 이일을 해야 한다. (아마 93세가 되면 내 움직임이 이럴 것이다.)

아침엔 나한테 “뭘 먹지?” 하고 묻는 것이 내 아침밥은 어떻게 하냐는 뜻이다. 보다시피 움직이기도 힘든 사람한테 당신 뭘 먹을래? 가 아니라 자기 밥 걱정하는 남편을 보며 진짜 앞으로 힘든 날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프면 짜증부터 내는 남편들은 밥 먹는 것에 목숨을 건다.

허리를 못 펴고 구부정해 지니 싱크대가 높아졌다.(93세쯤 되면 이만큼 구부정해 질 것이다.) 팔꿈치를 싱크대 위에 걸쳐 몸을 싣고 시금치를 씻어 국을 끓인다. 허리를 굽혀 도마와 칼을 꺼내 김치를 썰어 식탁을 차린다.(이정도의 일도 93세 나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다.)

지금은 장수가 화두가 됐다. 100세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재수 없으면 120 살 까지 살지도 모른다. 진시황이 그렇게 원했던 장생이다.
2010년에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었고 기대 수명은 93~95세다. 특별한 사고나 돌발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만큼 산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살지만 자식들한테 옛날식의 봉양은 꿈도 못 꿀 형편이다.
그러니 죽을 때 까지 내 밥은 내가 해결해야하고 내 수발은 내가 들어야 한다. 뿐만 아니다. 남편수발까지 함께 해야 한다면 정말 장난이 아닐 것이다. 93세 연습을 하며 남편과 어떻게 일을 나누며 감정도 나누고 함께 유대를 가지며 살아갈까를 깊이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다음날 아침 신문을 보니 “노인들은 집에서 양말 신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미끄러질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났다. 내가 노인이라니… 허걱! 아직 여든 살이 되려면 멀었는데.
지금 나는 씩씩하게 후기 중년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