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되었다. 말 듣던 대로 모두들 하하 호호 너무
행복해 한다. 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자기 팔 보다 더 긴 수저가 앞에
놓여 있다. 이것으로 어떻게 식사를 한담? 내심 걱정을 하고 있는데 마주 않더
니 수저를 들어 앞의 사람에게 떠 먹여 주는게 아닌가?
“뭘 드릴까요” “이것 맛 있겠네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식사를 한다.
다른 한 사람은 지옥에 가게 되었다. 역시 식사 시간에 긴 수저가 앞에 놓였다.
팔 보다 긴 수저로 자기 입에 퍼 넣자니 서로 걸리적 거리고 부딪혀서 싸움만
하게 되었다.
먹기는 커녕 흘리는게 더 많았다.
사람들은 다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 행복한 가정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행복하다.
똑같은 조건에서도 화목과 불화는 생각 나름인 것이다.
누구나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소망한다.
“사랑이 무엇인지요?”
강의 할 때 마다 물어본다. 사람이 너무 흔해서 일까 아무도 대답을 안한다.
버전을 달리 해서 묻는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 이라고 합창을 한다.
“사랑이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가족이 정말로 필요한 이유는 너그럽게 용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수요하는 것이다. 남편의 성공 여부에 따른
것이 아니다.
남편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받아 주는 것이다.
사랑은 배려다. 이해다. 용서다.
가정이 행복하고 화목하면 뭘 해도 잘되는 법이다. 혹시 실패했더라도 서로
부추겨 주는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재기에 성공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러나 불화하고 갈등하고 싸움이 잦으면 되는 일은 없게 마련이다. 마음은
움츠려들고 머리는 돌아가지 않는다. 창의력도 없어진다.
불행한 집은 그 원인도 사연도 다양하다. 백가지 이유로 불행하다.
되는 일도 없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무관심하게 되고 미움으로 가득하게 된다.
젊은 부부가 이혼 하겠다고 상담을 왔다. 남편은 자기 중심적이며 조목조목
따지고 반박한다. 아내도 사사건건 부딛히고 고집을 꺾지 않는다.
사랑이나 긍휼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은 실직하고 지원하는 회사마다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되었다.
서로 손잡고 격려하고 힘을 돋우어 주어도 힘든 세상이지 않는가.
영어의 Family는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이니셜이라고 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같이 순결하고 이타적인 사랑은 없다. 사랑이 빠진
가정은 가정이 아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다.
그런데 모두가 사랑결핍증으로 가슴이 시리고 공허하다.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고 두근거리는 언어들, 그것들 잊고 살다보니 모두가
실어증으로 허전하고 목이 메인다.
페러데이 새장 효과라는 것이 있다.
새장에 전류가 흐르더라도 새장속의 새가 안전하듯이 천둥이 칠 때 자동차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 상공기에 낙뢰가 쳐도 항공기 안이 안전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가정이 바로 그런 장소이다. 세상은 양육강식의 논리가 앞서고 밀림에서는
정글의 법칙만이 지배할 뿐이다. 가정이야 말로 피곤한 몸이 쉼을 얻는곳
이다.
상한 영혼이 치유받는 곳이다.
경쟁이 심하고 힘든 싸움을 싸울 수 있는 힘을 충전 받는 곳이다.
가슴 밑바닥에 묻어둔 감성과 언어를 분출시켜라
“여보사랑해, 고마워, 훌륭해요, 당신 최고야, 당신밖에 없어.”
자녀를 향해서도
“사랑한다. 잘했다. 자랑스럽다. 대견하구나. 너는 훌륭하다. 너 때문에
인생사는 맛이 난다.”
고객감동이 아니라 가족을 감동시키자.
힘도 돈도 안드는 립 서비스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따뜻한 눈빛에 따뜻함이 나누어진다.
이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