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가정 문화원 원장 김영숙)

아줌마는 50대 후반이다. 내 땅 한 뼘 없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너무 힘에 부쳐서 세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서울로 올라 왔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 살이가 너무 힘겨웠다.  20년이 넘게 남의 집 일로 집안을 이끌어 오고 있다. 억척스레 일했다. 아이들을 중 고등학교에  보내고 또  대학에 보내면서 손발이 다 갈라지고 피가 나도 반창고를 붙여가며 식당일도 하고 남의 집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변변한 수입도 없이 아내한테 손 벌려 담배 값도 술값도 뜯어 갔다. 원망도 하고 싸움도 했지만 남편이고 애들의 아버지니 어쩌겠나 체념도 했다.
아이들도 자립심이 강해서 나름대로 결혼도하고 자립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그만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일 나간 아내만 기다리고 누워 있다.
아줌마는 요즘 이런 남편이라도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침에 밥 차려 머리맡에 놓아두고 나오면 복지관에서 자원 봉사자가 와서 밥 먹이고 간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 움직이지 못하니까 나오면서 전깃불까지  다 켜놓고 나온다.
그래서 어두워 집에 돌아가도 집에 환히 불이 켜져 있어 좋다고 했다.
“여보, 나 왔어. 잘 있었어? 밥은 먹었어?”
그러면 남편은 애기가 되어 빙그레 웃으며 “왔어?” 하며 맞아준다.
아줌마는 그렇게라도 자기를 반겨주는 남편이 고맙다.
“이렇게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젊었을 때 그렇게 속 썩이고 제 멋대로 였던 남편이었지만 아이들 다 떠나고 둘만 남은 지금,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일은 해야 하고 너무 힘들면 투정도하고 바가지도 긁지만 이젠 빙그레 웃으면서 “알았어. 수고했어. 미안해.” 그런다. 그러면 마음도 풀어진다.
참 이상하다. 남편이 힘들게 할 땐 정말 원수같이 미웠는데 오히려 지금은 측은하고 귀하게 여겨지고 사랑스럽다. 남편의 마음이 아마 순해져서 그런가보다.
많은 부부들이 심한 갈등을 겪다가도 한순간에 풀어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풀어지는 고리가 무엇인지는 부부마다 다를 것이다. 8개월간 한집에서 남남처럼 말도 안 섞고 지내다가도 단 한 번의 강의를 듣고 마음 바꾸어서 사이가 좋아진 경우도 보았고  두 내외가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마지막으로 상담 한번 받아 보자고 왔다가 화해하고 나가는 일도 있다.
정말이지 부부란 게 참으로 묘하다. 그렇게 원수처럼 한순간도 보고 싶지 않던 사이인데 또 사이가 좋아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함께 손잡고 아이 낳고 키워가며 살아지는 것이다.
지금 갈등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 정말 화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기 의견은 좀 다  버리고 상대방의 마음에 귀를 가만히 기울여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마음이 보일 것이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위로와 배려를 하게 된다.
병들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을 때 그때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 할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때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귀히 여기고 위해 줘야 할 것이다.
아줌마가 그래도 남편을 고맙게 여기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것처럼 배우자가 있을 때 그 가치를 알아주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표현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도록 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