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선물이다. 가정에 생기를 주는 활력소이고 부부사이를 이어주는 메신저이기도하다.그래서 자녀 문제는 바로 가정의 행복지수이기도 하다. 자녀 일이라면 목숨이 열 개라도 주고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은 게 부모 사랑이다.
자녀들에게 누구로부터 상처를 제일 많이 받았는가를 물었다. 아이들의 63%가 “부모” 라고 대답했다. 그다음이 선생님, 그리고 친구였다.
부모들은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는데 왜 아이들은 상처를 받았다고 할까?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이들이 원하는 데로 해 주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사랑 안에서 자라나는 자녀는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 진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들의 내면 보다 자녀의 외모인 머리모양, 옷차림, 하는 행동에만 신경을 쓴다. 자녀를 자녀의 입장에서 자녀의 눈으로 이해하고 생각하려는 노력은 무시한 채 나의 눈높이에, 나의 인식 수준에 맞추려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가 하는 건 뭐든지 못마땅하고 맘에 안들 때가 많았다. “공부해라.” “일찍 다녀라.” “게임 그만해라.” 온통 해라, 하지 마라 뿐 이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부모로부터 듣는 말중 제일 듣기싫은 말은? 바로 내가 애들에게 했던 이런 말들이었다. 그럼 제일 듣고 싶은 말은 ?
“사랑해.”
“넌 어쩌면 이렇게 잘하니?”
“용돈 좀 줄까?”그런데 이런 말에 참 인색하다.아이가 대학생이 된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엄마 , 내가 중학교 때 머리 빡빡 밀고 왔었잖아요? 그때 엄마가 뭐랬는지 알아요?” “……” “미쳤구나, 아주 머리까지 빡빡 밀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너무 화가 났어요. 성적도 떨어지고 공부도 맘대로 안돼서 머리 깎고 심기 일전해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다짜 고짜 소리 지르고 혼내는 바람에 김이 샜어요. 그래서 공부고 뭐고 다 집어 치웠어요.” “그랬었니?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용서해 줘.” 나는 아이한테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 한번만 물어 볼 걸. 무엇이 그리 성급해 아이에게 왜 그랬니? 라고 물어 보지 않았는지. 참 이상했다. 아이는 그것이 큰 상처여서 10년이 지나도 마음속에 있는데 상처 준 엄마는 왜 다 잊어 버렸을까? 아마도 엄마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서 그래도 괜찮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보자 아이의 생각을 헤아려 보자.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다만 마음의 눈높이가 다른 것 뿐이다.아무튼 나는 이렇게도 미숙한 엄마였다. 어느 날 아들이 머리에 브릿지를 하고 들어 왔다. “야, 멋있네. 근사하다. 우리 아들 진짜 예쁘다.” 아들은 우리 엄마 또 얼마나 잔소리하고 혼낼까 잔뜩 겁을 먹고 들어오다가 칭찬을 하니 뜻밖이었나 보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그 애의 마음을 사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한 것이 정말로 예뻐 보였다. 젊으니까 하지, 아직 학생이니까 하지, 젊은 애가 노친네 처럼 단정하게 머리 깎고 점잔 빼고 다니면 그건 또 얼마나 우스울까? 그러고 보면 나도 많이 변했다. 그런데, 이렇게 칭찬을 들은 아이는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변한 만큼 아이들이 변해 갔다. 지금은 물론 회사에 다니고 있다. 영업의 책임을 맡고 열심히 일한다. 물론 브릿지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다. 예전엔 아이 하는 건 뭐든지 어설퍼 보이고 맘에 안 들고 못 마땅한 게 많았는데 지금은 뭐든지 다 잘 한다는 거다. 신체적으로도 강건하고 지식도 새로운 거 많이 알고 컴퓨터도 잘한다. 이 나이 되고 보니 아이들 보다 나은 건 걔네들 보다 경제적으로 좀 안정된 생활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것도 곧 역전 될 때가 온다. 그래서 지금은 나는 내 아이들에게 정말 잘 보이고 싶다. 그래야 아이들이 영화도 보여주고 연극 구경도 가자고 하지. 아이들을 많이 칭찬하자.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내 아이의 멋진 모습을 그리면서 칭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