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외손자 다빈이는 할아버지를 정말 좋아한다.
그 애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10살이던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비행기 태워 주니 혼자 15시간을 비행기타고 왔다.  외가에 오는 것을 싫다하지 않고 와 주는 게 고맙다.
할아버지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맛있는 거를 먹을 때도 할아버지랑 먹었으면 좋을 텐 데하며 아쉬어 한다.
“할아버지 냄새 좋아” 그러면서  쿵쿵거리며 뒤를 따라 다닌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아빠들이 대게 그러하듯 일에 묻혀 일찍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다. 매일 늦다.
하루는 다빈이가 내게 말했다.
“ 할머니,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매일 늦어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순간 뭐라 해야 할 지 당황스러웠다.
“ 아냐. 할아버지는 밖에 중요한 일이 많으셔서 늦으시는 거야.”
“ 그럼 우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디이잉~~
이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했더니 다음날 모든 일을 다 뒤로하고 일찍 들어왔다.
다빈이는 저녁을 먹고 할아버지와 재미있게 놀 생각이었는데 금방 방에 들어가 주무신다.
“할머니, 할아버지 일찍 주무시면 늦게 들어오는 거랑 똑같아요.” 하며 섭섭해 한다.
내가 일찍 들어오라고 평생 노래를 불렀건만 들은 체도 안하던 남편이다. 평생을 일에 치여 아내도 자식도 눈앞에 없던 남편이다. 그런데 손자 얘기를 듣고 느낀바가 있어서 일까 아니면 좀 놀아 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가?
남편은 엄숙하고도 진지하며 사랑은 생각 속에서나 하고 그러면서도 가족을 제일 사랑했고 아내와 자식을 위해 평생을 일했다고 한다. 밥 안 굶긴 것이 자랑이고 밖에서 딴 짓 안한 것이 어디냐고 큰 소리 친다.
정말 사랑한다면,  아내와 자식을 정말 사랑한다면 함께 있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자식이 어떤 고민을 하며 크는지 딸내미가 사춘기가 되니 점점 아가씨로 자라가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이라 생각하면 안될까?
“여보, 나도 꿈이 있어요.” 하고 투정이라도 할라치면
“여자가 꿈은 무슨 꿈 남편 내조나 잘하고 애나 잘 키우지 왠 배부른 소리야.”
그러나 남편이 성취한 모든 것 이룬 것들을 가족과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성공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행복을 느끼고 진심으로 기뻐할 곳은 가정이다. 밖에서 쾌락을 쫒고 행복을 느껴보아도 곧 사라질 뿐이다.
오늘 모처럼 일찍 들어와 다빈이와 동화책을 함께 읽으면서 자식 키울 때도 느끼지 못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할아버지는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피노키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가정문화원원장 김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