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19일(220호)

“아들이 설거지 하면 못난 놈, 사위가 설거지 하면 예쁜 놈.”
내 형님의 투정이다.

막내 아들 결혼시켜 사는데,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 드나드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고 속이 상해 도무지 못봐 주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사내 녀석이 설거지나 하고 며느리는 TV나 보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진다는 것이다.

“형님, 자식이 부엌에서 일하는 것이 못난 짓으로 밖에 안보이죠. 사위가 설거지를 해도 그럴까요. 아마 그때는 예쁘게 보이겠지요.”
사고의 전환과 설득이 필요했다. 이제는 고루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문화가 바뀌었다. 시대가 달라졌다.

21세기 문화 속에서 19세기 사고방식을 산다면 사회와 조직에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그러하지만 부부간에도 자기 중심적 생각과 사랑이 갈등이 되고 파국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문화가 이기심을 조장하기도 한다.
데이트하는 동안에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마냥 좋기만 했지만 결혼하여 막상 같이 살고 친밀한 관계가 되면 낭만은 종을 친다. 상대방의 결점이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결혼 전에는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프랑스 신생아의 37% 이상이 혼외 출산이라고 한다. 사별이 아닌 편부, 편모, 이복형제, 다원가족, 복합가족 형태를 많이 본다.

이혼은 부부가 자녀를 양쪽에서 잡고 찢는 행위와 같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아빠와 헤어져 편부모 혹은 할머니 밑에 맡겨지거나 천덕꾸러기가 되고, 아예 고아원 신세가 되기도 한다. 당사자는 물론 자녀들이 입는 충격과 해악은 대단한 것이다.

이 비극적인 이혼사유는 하나같이 지극히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불쑥 내 던진 말 한 마디, 퉁명스러운 표정, 자녀문제 등. 이런 작은 시비가 쌓이면 큰 갈등으로 증폭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치유가 되고 행복이 보인다. 이혼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출발이다. 이혼하는데 소모되는 노력과 수고, 그리고 비용을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 되는데 투자해 보자.
평소 잘 아는 조금은 강인한 성격은 C장로님이 M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강의 내용이 자기 이야기를 한 것 같고 최고의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후 그 부인 되는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세상을 다시 사는 것 같다며 결혼 생활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마냥 행복해 했다. 부인의 표정은 물론 피부까지도 전과 다르게 사랑의 화사한 꽃이 피는 미인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남편의 작은 배려와 새로운 모습과 아내에게 최고의 영양제이고 화장품이 된 것이다.
S교회의 L장로님은 강의 후 “두 장로님 언제 우리 집에 와 보았어요?”하는 것이다. 자기 집 이야기를 한 것 같다며 자기가 그렇게 살았노라고 고백한다.
S그룹의 K회장은 특강을 듣고 난 후 몇 가지를 적용했더니 아내가 “당신 왜 이렇게 자꾸만 달라지냐”고 마냥 행복해 하면서 서비스가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위의 인용된 사람들이 부족하거나 나쁜 사람들인가, 아니면 잘못된 사람들인가. 전혀 아니다. 착각하고 살았을 뿐이다. 아니면 조금 소홀히 생각하거나 무관심했거나 몰라서 그랬을 뿐이다. 잘못된 태도와 습관, 그리고 자기중심적 삶이 지혜를 가린 것이다.
사람은 상대방 중심의 사랑을 해야 한다. 조금만 배려하고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갈등을 줄어들고 갈등이 변화되어 행복과 축복으로 변한다.

두상달 김영숙 부부
giantd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