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에는 고운 정,미운 정으로 살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민의 정에 급기야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 왜 젊어서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젊었을 때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벼들었어야 할 일도 이순에 이르니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자’고 한다. 살을 맞대고 살아가면서도 생각과 감정이 다른 것이 부부다. 사랑과 미움과 서로 다른 정서와 욕구를 교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부부를 영원한 이방인이라고 표현한다. 서로 다른 것은 분명 축복이다. 그런데 그 다른 기질,다른 습관,다른 생각과 행동 때문에 부딪치고 엉키기도 한다. 싸움과 갈등,그것은 결혼생활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가정의 행복은 거대한 담론보다도 사소한 일들의 모자이크다. 그 사소하고 작은 일들이 부딪치고 엉키면서 희로애락을 연출한다. 하나는 밖에서 외벽을 쌓느라 바빴고 또 하나는 아이들과 보금자리를 따뜻하게 지피느라 바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작은 일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일 지향적인 남편들의 눈에서는 종종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자녀도 보기 힘들다. ‘아빠,바빠,나빠’는 맞는 말이다. 가정과 직장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성공의 기쁨을 나눌 수 있고 실패와 좌절,더 나아갈 수 없는 절벽 앞에서 위로받고 일어설 수 있는 곳이 가정이다. 지구촌을 대상으로 사역한다 할지라도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가정은 최우선 사역지다. 미국의 크립베르 목사님은 의식불명이 된 아내를 돌보기 위해 교회를 사임했다. 수많은 성도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물러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보다 이 사람을 더 사랑하는 주님이 이 여인을 데려갈 때까지 나는 이 여인을 돌봐야 합니다. 교회 일은 대신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 역할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아내를 끝까지 돌봐야 합니다.”

회사일,교회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남편노릇,아버지 역할은 다른 사람이 대역할 수 없다. 이웃집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정은 평생 직장,1차 사역지다. 뜻밖의 선물일수록 감동이 크다. 그리고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텅빈 아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여보 사랑해. 힘들지?”

두상달  가정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