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웬수! 서로 사랑해라.
부부는 사랑의 관계인가, 웬수인가?
가장 친밀한 사이가 부부이면서 때로는 원수처럼 사는 게 부부다.
아니 대부분의 부부들은 그저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된장 쉰 것은 1년 원수지만 배우자 나쁜 것은 백년 원수란 속담도 있다.
초혼의 젊은이들에게는 분출되는 호르몬과 열정과 싱그러움이 있다.
설렘과 감동과 가슴 적시는 사랑도 있다.
그러나 세월의 연륜과 더불어 이러한 것들은 소멸되어 간다.
사랑의 호르몬은 30개월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젊어서는 고은정, 이쁜정으로 산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는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하면서도 부딪치고 엉키기도 한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연륜과 더불어 고은정, 미운정, 구린정이 엉키고 그러면서 연민의 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부다.
그래서 오래 산 부부일수록 세월의 두께만큼 감사와 긍휼과 연민의 정은 그 깊이가 깊다.
텔레비전의 한 노인 프로그램에 여든을 넘긴 부부들이 출연했다.
사회자는 이 부부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퀴즈를 내고 있었다.
그중에서 낱말맞추기 게임이 시청자들의 폭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어느 한쪽이 먼저 낱말이 적힌 글자판을 보고 상대방에게 그것을 설명해 답을 맞추는 게임이었다.
한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라는 글이 적힌 글자판을 들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향해 그 단어의 뜻을 설명했다.
“우리처럼 서로 오래 잘 사는 사람을 뭐라고 하지?”
“….”
할아버지는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다시 설명했다.
“우리 같은 부부를 왜 이것이라고 하잖아!”
할머니는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웬수”
객석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다. 할아버지는 일단 움찔했다가 다시 진땀을 흘리며 단어의 뜻을 설명했다.
“그것 말고, 네 글자로 뭐라고 하지?”
할머니는 더욱 자신감을 보이며 대답했다.
“응, 평생웬수”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둘 사이를 빗대어 ‘천생연분’으로 설명했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평생웬수’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자가 다시 물었다.
“그 동안 부부싸움을 안하셨나봐요?”
“예, 할머니가 내 성격을 알고 모두 받아주었어요. 우리는 천생연분입니다. 절대로 싸움 같은 것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할머니의 대답은 약간 달랐다.
“부부싸움이요? 말도 마세요, 내 속 썩은 줄을 누가 알기나 하겠어요? 하나님이나 내 검게 탄 속을 아실까요”
약간은 농담처럼 들리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이것이 오늘날 많은 부부들의 자화상이다. 한쪽은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한쪽은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상대의 행복과 불행, 고통과 상처에 대해서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속이 썩는 줄도 모른 채 ‘천생연분’이라 여기며 살아온 무심한 할아버지, 인생의 고통을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
이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너무 모르거나,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살아온 부부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남녀가 진정 행복의 집을 건설하려면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남성은 여성을 알고, 여성은 남성을 알아야 한다.
내가 표현한 사랑과 관심이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달됐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더구나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부부는 나이가 들수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 인생에서 결혼생활만큼 발전과 성숙을 위한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는 곳은 없다. 갈등과 위기가 행복한 가정의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며 축복의 요인이 되었다.
갈등은 성패가 갈리는 경기가 아니다. 부부갈등은 윈윈게임(win-win game)이 되어야 한다. 갈등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갈등이 없는 곳이 있다. 공동묘지이다. 아니 확실하게 부부갈등이 없는 곳이 있다. 혼자 사는 것이다.
갈등은 터널과 같다. 빨리 통과해야한다. 그곳에 머무르면 고통이다.
남에게 피해이고 독가스만 실컷 마실 뿐이다. 갈등한다고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고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신과 전문의 린드먼 박사는 가정생활에 위기를 당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85% 사람들이 위기를 당함으로써 나쁜 습관을 고치고 부부관계를 회복했으며 시간과 물질을 절약하며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했다.
갈등과 부부싸움은 하나됨(oneness)으로 가는 기회요소일수도 있고 파경(separation)으로는 첩경이 될 수도 있다. 잘 싸워라. 그러면 가까워진다.
부부된 자들아! 서로 사랑해라.
왜? 부부는 웬수니까. 성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두상달 가정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