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조선 20. 노년을 스스로 준비해라

쏘아버린 화살은 활을 떠나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활시위를 당긴 이상 마음대로 붙잡아둘 수 없다.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노년을 슬프게 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순회강연 중 만난 P박사, 서울에서 일류 대학을 나와 결혼을 하자마자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 그런대로 정착된 사람이다.
그의 부모를 내가 안다. 귀국해서 그의 아들 소식을 전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소식이다.
만나서 한참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전하였다.

반가운 소식을 얼마쯤 듣다가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그래요, 우리 늙은이들 둘이만 지금 살고 있어요.

둘이 살다가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나겠죠.

그리고 혼자 살다가 얼마 있으면 그마저 또 가야죠.” 너무나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자신들ㄹ의 한탄조 이야기만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처량하게 들렸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오매불망 오직 그 아들 잘되서 돌아와 부모 봉양하기를 바랬지만 그게 아니라 찾아오지도 않는다.

어쩌다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어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쪽에서 전화한번 걸어오는 일이 없다.
자기들 살기가 바쁜가 보다.
부모의 용도는 페기되었는가? 부모를 챙기지 않는 세대다.

3번아 5번은 간다라는 칼럼을 10여 년 전에 쓴 일이 있다.
시골에서 사는 부모가 모처럼 아들집에 찾아갔다.
며칠 있어보니 거추장스럽고 천덕꾸러기 같다. 귀함 받는 최우선 순위에 서열이 있다. 첫째는 손녀손주다. 둘째는 며느리다. 셋째가 아들이다. 넷째가 자기이기를 바랬지만 4번도 아니다. 기르는 강아지다. 그리고 다섯째가 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제일 꼴지가 부모인 것이다.

며느리한테 큰소리한번 쳐 볼수도 없다.
며느리나 손주 손녀도 아니, 강아지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밥도 눈칫밥 먹는 것 같다. 그래서 아들한테 3번아 5번은 간다. 하고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방송에서 말했더니 항의 전화가 왔다. 순위가 틀렸다는 것이다. 5번이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5번에서도 밀려서 겨우 7번이라고 한다.
5번과 6번은 장모 장인이 라는 전화이다. 여권이 신장되면서 친가보다는 처가 쪽으로 판세가 기울어져있다.
자녀의 효도기간은 4세 까지라고 한다. 부모한테 엉기고 따르고 재롱부리고 웃음을 선사할 때까지. 그래서 효도의 90%를 4살까지 마친다는 것이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한다.
자식농사 잘 지었다고 말들 하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자의식이 생길수록 부모 그림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게 자식이다.
부모는 진땅 걸어가도 자식은 메마른 땅 걸어가기 바라는 게 부모다. 그래서 전체를 받쳐 희생하는 것이 부모다.
개발년대를 살아온 사람들. 오직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삶 전체를 바쳐 뒷바라지를 했다. 바로 그것이 노후보장과 보험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문화가 바뀌었다. 부모를 모시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부양 문제는 형제간, 부부간, 갈등요인이 된다. 노환의 부모는 더욱 그렇다.

이제는 노후를 자기 스스로 준비해야만 한다.

어쩌면 오늘의 중년은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다. 또한 자녀로부터 배척받는 1세대이다. 그것을 모르고 노년을 맞이하면 초라하다.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 노년을 스스로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