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CEO 7월호>

나와 너무나 다른 당신
– 두 상 달

다문화사회 백만시대다. 한국 남자 열 명 중 한 명은 외국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산다. 한국도 이제 단일민족의 라벨을 벗어던질 때가 되었다. 단일민족이란 더 이상 자랑이 아니다. 한편 단일화가 무너지는데 대한 우려도 있지만 인간의 결합에 있어 다름은 축복이다. 다민족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갈등도 있겠으나 다양성으로 인한 시너지효과는 엄청난 것이다. 다름은 새로운 창의성을 낳고 우리사회의 정체된 흐름을 변화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강연 중 다름의 미학을 강조한다.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다양성이 개인과 사회를 발전시킨다.

<우리 부부는 맞는 게 없어요>
“우리 부부는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어요.”
가정문화원에 상담하러 온 부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서로 맞지 않기로는 상담을 해 주는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둘이 함께 강연을 다니는 우리 부부가 갈등이라곤 아에 없는 찰떡 궁합인 줄 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자라 온 환경이 달라서인지 작은 생활 습관부터 맞는 게 없다.

깡촌에서 자란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형이다. 일찍 일어나야 논에 나가 새도 쫓고 물꼬도 본다. 어려서부터 익혀 온 생활 습관은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었다. 반면 도시에서 자란 아내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형이다.

일찍 일어나는 대신 나는 밤 10시만 되면 눈동자가 반쯤 풀려 비몽사몽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때부터 반짝반짝 생기가 돈다. 내가 아무리 “그만 자자”고 졸라도 밤이 깊을수록 머리가 맑아진다며 늦게까지 일에 매달린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베개에 머리가 닿는 순간 잠에 빠져드는 나와 달리 아내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편이다. 혼자서 온갖 상념을 다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풀어내다가 “잠들었어?”하며 자는 나를 툭툭 친다. 이러니 올빼미형과 살아야 하는 종달새형은 잠자는 것부터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부부는 입맛도 달랐다. 아내는 서울에서 자라 맑은 국과 담백한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다. 바다 가까운 곳에서 자란 나는 주로 짭조룸한 젓갈과 얼큰한 음식을 먹으며 자랐다. 신혼 초에는 아내가 해 주는 음식이 도무지 싱겁고 밍밍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니 아예 입맛에 맞지를 않았다.
그뿐 아니다. 아내는 위로 조부님을 모시고, 아래로 동생 셋을 책임져야 하는 맏이였다. 먹을 것이 생기면 먼저 조부모님 드실 것을 덜어 놓고 동생들 몫을 공평하게 나누느라 늘 남을 배려하고 챙기며 자랐다. 나는 대가족 5남매의 막내였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내 먹을 것을 꼭 챙겨 주셨기에 다른 형제와 나누어 먹을 필요가 없었다. 나만 잘먹으면 “아이구, 우리 막내 잘도 먹는구나” 칭찬받으며 자랐다. 한마디로 내 입만 입이요, 남의 입은 입이 아닌 줄 알고 컸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니 막내인 내가 형제들과 나누어 먹었다간 아마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내가 결혼해서 아내를 잘 챙기고 배려했을 리 만무하다. 먹을 것이 생기면 내 입만 생각하는 생존의 버릇은 자란 후에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신혼여행 때, 귤 한 봉지를 사서 혼자 홀라당 다 까 먹는 것을 아내는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뭐 저렇게 이기적이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다 있어? 내가 이런 사람을 믿고 평생을 살아야 되나?’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 아내는 강연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이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부부는 체질도 기질도 다르다. 더위를 못 참는 나는 여름이면 어디를 가나 에어컨을 켜놓고 산다. 그러나 아내는 선풍기나 에어컨의 찬바람을 견디지 못해 자동차 안의 에어컨 구멍을 다 틀어막아 놓는다. 아침에 일어나면나는 집 안의 문이란 문은 다 열고 다니고 아내는 내 뒤를 쫒아다니며 열어 놓은 문을 다 닫는다. 그러면서 서로 이기적이라고 으르렁거리며 다툰다.
성격도 그렇다. 나는 외향적인 편이고 아내는 내성적인 편이다. 결혼 전에 아내는 결단력 있고 활달한 내 성격이 좋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함께 살면서는 내 성격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성격이 듭하고 다혈질인 나는 어쩌다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내 성질대로 마구 퍼부어댄다. 물론 뒤끝도 없어서 퍼부을 대로 퍼붓고 나면 “끝!” 하고 혼자 잠들어 버린다. 그러면 아내는 그때부터 속을 끓이고 삭이고 한다.
‘이 인간! 한바탕 퍼부어대고는 속 좋게 곯아떨어져? 그래, 저만 뒤끝이 없으면 다야?’ 그래서 아내가 지금까지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뒤끝 없는’사람이란다.

신혼 초에는 이렇게 두 사람이 과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남자와 여자가 하루아침에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환상은 깨지고 남은 것은 실망뿐이었다. 우리는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 파괴의 잿더미 위에 아름다운 가정을 일으켜 세웠다. 서로가 다른 존재임을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와 다른 너’ ‘너와 다른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자고 마음먹으니 이해와 조화의 길이 열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으니 아내가 틀렸다고 여겼고 내가 더 우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가 갖추지 못한 면을 두루 갖춘 아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섬세함과 나누고 챙기고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함을 지닌 아내, 나는 그런 아내에게 깊은 사랑과 애틋한 정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아내한테 빌붙어다니고 망가지면서 가정 행복 특강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