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달라진 문화 속에서의 변신

[[제1537호] 2017년 2월 11일]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가정적인 아버지가 필요하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는 소통, 감성과 인성을 키운다.
아버지를 통해서는 지도력, 판단력, 결단력과 추진력 등을 배운다.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데 실패한 자녀들은 자존감이 낮고 사회성이 부족하다.
열등의식에 결단력과 지도력도 떨어진다. 범죄율도 높다.
아버지가 순기능을 못할 때 자녀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경건한 가장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세상을 바꿀 만큼 크고 위대하다.
아버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할 때 필요한 자리에 있어 주는 것이 행복이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야 한다.
힘들고 버거울 때 다가와 등 두드려주는 아버지를 원한다.

간섭하거나 잔소리하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리고 격려해주며 껴안고 기도해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순기능을 모두가 원한다.

아버지들이여, 이제까지 직장에서 성취라는 사다리만을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지는 않았는가?
이젠 내려와 가정이라는 사다리로 바꿔 타야 한다. 바꾸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행복은 깨진다.
성공을 이루었다 해도 삶의 작은 기쁨들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밖에서 승승장구 잘나간다 해도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없다면 진정한 행복은 놓치고 있는 것이다.
압축경제를 살아온 기성세대들은 가정의 희생 위에 일 위주의 삶을 살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 나라 경제 부흥은 아내들의 소외와 고독을 먹고 자랐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일 지향적 사람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일이 목적이고 삶의 전부였다. 할 일도 많고 하는 일도 많았다.
아내가 성화를 부린다. 일 좀 제발 줄이고 여백을 누리자고, 지금 그 일을 줄여 보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내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따라 복창하라고 강요한다.
“나 두상달의 소명은 무엇이냐?”
“김영숙(아내)과 함께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것을 다 요구한다. 젊어서 안하던 별짓도 다하고 살아야 한다.
문화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달라진 문화 속에 생존하려니 별수가 없다.

아침이 즐거우면 하루가 즐겁다.
아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내가 편안하다.
이것을 알지만 실천이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도 하는 수 없이 이 말을 중얼거리며 출근길에 오른다. 아침 발걸음이 가볍다.
잔소리 해대는 원수 같은 아내가 아직은 내 곁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