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아들들아 63세는 평균수명도 아니다
[[제1564호] 2017년 9월 16일]

서울 모 대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이다.

부모한테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40%가 ‘돈’이라고 대답했다.

또다시 물었다.

부모가 언제 죽으면 좋겠느냐?

대답인즉 부모 나이 “63세에 죽길 바란다”라고 했다.

왜? 그 이유는? 100세 시대인데….
은퇴 후 퇴직금 받았으니 다 쓰지 않고 남아있을 때 죽으라는 것이다.
현대판 저질 고려장이다.

자식 잘 키우면 축복이다.
그러나 인성과 신앙이 결여된 자녀 양육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은 ‘자식 꽃’이라고도 한다.
자식이란 때론 부담과 짐이 되기도 하지만 가장 큰 행복감을 주는 사랑과 귀여움의 선물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만큼 고귀한 것이 없다.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내리사랑이다.
그래서 자식 사랑은 일방적이고 때로 짠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자식을 키워보지 아니한 자 부모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자식한테 사랑을 투영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사랑의 화신이 있다면 모정일 것이다.

열 자식 있다면 한 자식에게 10분의 1의 사랑을 주는 게 아니다.
열 자식 하나하나에게 10의 사랑 전체를 주는 게 부모이다.

나는 진 땅 걸어가도 자식은 마른 땅 위를 걷기를 바란다.
오직 한 가지 자식 잘 되기를 바라며 전체를 투자하는 게 부모이다.

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때론 우산이 되어 주고 그늘이 되고 토양이 되며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둘 수 있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보살피지 못한다.
자식 키우며 자녀 때문에 눈물 안 흘려 본 부모가 어디 있으랴.
열 손가락 찔러 안 아픈 곳 없듯 어느 자식의 고통과 아픔이 나의 아픔이 아닐 수 있던가?

어린 자녀가 병 앓이에 심히 고통스러워 할 때면 부모 심장은 타들어 가는 것만 같다.
자녀가 고통에서 벗어나 나을 수만 있다면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인들 못하랴.

내 눈을 뽑으랴. 내 심장을 빼랴.
어떤 희생을 해도 무엇을 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래서 부모의 또 다른 이름은 희생이기도 하다.
그런데 부모 자식 간의 이렇게 순결한 사랑도 변질되고 그 순도가 흐려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부박한 세태이다.

배수진을 치고 이 나라를 일구어온 세대들이여.
63세는 평균 수명도 아니다.
그런 말하는 자식들 위해 돈 남겨둘 이유 없다.

“100세까지 누리며 잘 쓰고 다 쓰고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