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자녀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춰라
[[제1567호] 2017년 10월 14일]

5년 전 프랑스에서 폭염으로 2만 5000명의 노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자녀들한테 전화가 혹시 오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전화기 옆에서 죽어갔다고 한다.

예전엔 가정의 중심이 어른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가정의 중심이다.

산에 가면 산삼, 바다에 가면 해삼, 집엔 고3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자녀 중심으로 돌아간다.

집안에 입시생이 있으면 고3이 왕이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쏟다가는 노년의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다.

자식의 효도 기간은 5세까지라고 한다.

미운 7살부터 말썽을 부리고 사춘기, 대학교,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모는 자녀에게 신경 쓰는 일 많다.

그런데도 아들은 장가보내면 딴 여자의 남편이 된다.

아들은 군대 보내면 ‘국가의 자식’이고,

잘난 놈은 장가보내면 ‘딴 여자의 남편’이요,

‘장모의 자식’이란 말이 생겼고 못난 자식만 내 자식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오래전, 미국 출장길에 친지분의 자녀를 만났다.

귀국 후 그 부모님께 미국에서 만난 아들 소식을 전해 드렸다.

그런데 하나도 반가워하지 않는 게 아닌가?

“반갑지 않으세요?”하니

“아니요. 애들이 미국으로 다 떠나고 지금은 우리 둘만 살고 있어요.

둘이 살다 하나 죽으면 혼자서 쓸쓸히 살겠죠. 그러다 그마저 죽으면 끝이지요.”

너무나 서글프고 처량하게 들렸다.

그분은 정말 열심히 자식 뒷바라지를 한 분이었다.

허리가 휘도록 돈 벌어 공부 시켜 주었는데 자식들이 미국이민 간 후 별로 연락도 없으니 쓸쓸하고 섭섭한 것이다.

자식에게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나이 들어 실망이 크고 우울해진다.

“자식한테 기대 수치를 낮춰라.”

어느 시골마을에 지역개발 보상비로 거액이 나왔다.

시골집에 큰돈이 생기자 평소 잘 찾지 않던 자녀들이 주말마다 내려온다.

시골 도로가 막힐 정도로 교통 혼잡을 이루었다.

손주들을 데리고 부모에게 인사하러 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들 며느리가 오면 무엇을 얻으러 왔는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오면 ‘2인조 강도’같다.

딸·사위는 ‘날강도’이다. 손주들은 ‘좀도둑’이다.

손주들에게 사주는 장난감 비용도 만만치 않다.

명절 때는 이들이 한꺼번에 떼 지어 몰려온다.

그야말로 ‘떼강도’같다.

그것도 부모가 잘 살아야 찾아온다.

예전엔 자식 잘 가르치는 게 노후보장이었다.

요즈음 그걸 기대했다간 노년이 초라해진다.

확실한 노후대책은 자식한테 손 벌리지 않는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런데 피보다 더 진한 것이 ‘돈 촌수’다.

점퍼 차림으로 운동화 끌고 병원에 입원해도 자녀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리고 찾아온다면 돈을 끝까지 쥐고 있는 사람이다.

양복을 입고 가족들을 거느리고 멋지게 입원했어도 몇 개월 지나니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상속을 이미 다 마친 사람이다.

부모가 상속을 끝냈느냐, 돈을 쥐고 있느냐의 차이다.

상속에도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자식들은 부모한테 의존을 하지만 부모는 자식한테 의존이 안 된다.

다 늙어 자녀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