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여보, 밥 먹었어?
[[제1419호] 2014년 7월 5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고 한다. 관심 밖에 벗어나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기 절정의 스타가 대중의 초점으로부터 멀어질 때의 비극을 종종 본다. 무관심이 커지면 파멸을 가져온다.
사랑의 종착점은 무관심역에서 시발되는 것이다. ‘사랑과 관심’에 관련하여 젊은 시절 배운 문장이 떠오른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과 어쩔 수 없는 기막힌 사연에 의해 이별을 해야만 했다. 몇십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한쪽이 너무나도 변해 있었다. 그를 알아볼 수가 없었고 그녀도 자기를 몰라보아 몹시 서글펐다. 그때 외친 말이다. “The traged
y of love is not separate but indifference.(사랑의 비극은 헤어짐이나 떨어져 있음이 아니다 무관심한 것이다).” 한쪽은 오매불망 늘 가슴에 담고 있었건만 한쪽은 잊어버리고 무관심인 것이다.
매일의 삶 가운데 가장 관심을 가져야할 대상은 누구인가? 나는 하루 일과가 끝난 후 밖에서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금은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나한테 꼭 한마디 하는 말이 있다. “나 밥 먹었느냐고 안 물어봐?” 그제야 나는 번쩍 생각이 나 “저녁밥 먹었어?” 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그래 안 먹었다. 어쩔래?” 하며 짓궂게 아내는 심통을 부린다. 식사를 하고 늦게 들어온 날이면 자기한테도 저녁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그렇게 일러주어도 안 물어본다고 시비를 걸고 성화를 부린다. 배고프면 밥 먹고 때가 되면 의당 식사하고 기다릴 일이지, 왜 허기진 배를 채우지 않고 쫄쫄 굶고 있다가 귀찮게 그걸 물어보라고 할까?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머릿속으론 받아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 속을 굴려보지만 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아내의 심기만 건드려 놓고 찬밥 신세가 될테니까 말이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아내한테 그걸 물어보는 쪽으로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까마득하게 잊고 딴짓 하다가 아내가 옆구리 찌르면 그제야 허겁지겁 물어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매번 핀잔먹기 일쑤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조그마한 일들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배려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게 우리 일상이다. 중년 여성들에게는 특별히 자상한 남편이 대접을 받는다. 저녁을 먹었으면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랑 먹었는지 그게 궁금한 모양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저녁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결혼 전에는 나도 자상한 사람이었다. 결혼 초까지는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상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내 아내는 자상한 남자가 좋다고 한다. 투박한 나에게 때때로 투정을 부린다. “상냥하도록 해야 내가 상냥하지.” 이것이 아내의 투정이다. 사실은 나도 상냥한 여자가 좋다. 때때로 아내가 좀 더 상냥했으면 한다. 아내의 애교는 주책스러워도 사랑스럽다. 사는 데는 곰보다 여우가 좋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정말 상냥스럽게 보인다고들 하지만 내 아내는 상냥하고는 거리가 멀다. 나는 아내가 토라지고 삐졌다가도 여우처럼 다가와 애교를 부리면 좋겠다. 사랑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