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짝짓기

[[제1405호] 2014년 3월 15일]
방송채널에서 꾸준히 인기를 모으는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남녀가 이름 대신 번호로 ‘남자1호’ ‘여자1호’하면서 12명의 남녀가 호수별로 만남을 갖는다. 최종적으로 마음에 드는 상대의 호수를 찍어 서로 맞으면 짝이 되는 것이다. 짝짓기는 예나 지금이나 동물 최고의 관심사다. 인간도 동물이니 짝짓기에 대해서는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한 번 짝짓기를 마치면 평생을 같이 가야 한다.

문제는 짝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 넘쳐난다는 데 있다. 한 번 정해진 짝을 바꾸기 위해 이혼이라도 불사하겠다고 수작을 부린다. 장수시대는 인간의 행복의 연장일 수도 있지만 갈등의 연장일 수도 있다. 짝짓기가 잘 되면 인생이 행복하지만 그렇지 못한 만남은 지옥같은 삶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콩깍지가 씌어서 짝을 이룬다. 그런데 그 콩깍지는 벗겨지게 되어 있다.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 인간지사이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다. 고통 끝에 행복이 온다. 갈등이 없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부부란 애증의 경계선상을 오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했다가도 정이 들고 미운 정 고운 정 쌓여 안쓰러움과 측은지심이 생기면서 다시 좋아지는 관계가 진짜 부부다. 그런 세월을 겪기도 전에 짝이 싫다고 아우성치면서 갈라서는 풍토가 참으로 안타깝다. 반면 100세 시대를 살다 보니 참고 사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20년 이상 맘고생하며 살았는데 남은 40~50년은 맘 편히 살겠다는 아내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바로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 있는 반항이겠지만 방치하기에는 개인이나 국가 모두 엄청난 손실이다. 특히 남자에게 있어 황혼이혼은 치명적이다.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평균 4~7년 정도 생명을 단축하는 일이다. 필자는 전 국민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서 수많은 중년 남성들에게 일찍이 주제를 파악하고 변화하라고 강조해왔다. 교육을 통해 개중 개과천선하여 가정의 행복을 이루고 감사를 전해 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가하면 남자의 자존심을 앞세우며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는 오기를 부리다 뒤늦게 상담해오는 서글픈 사람들도 있다.

후회는 항상 한 발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부부란 지상에서 맺어진 30억 분의 일의 기막힌 인연이다. 가정의 행복이란 부부가 살아 있는 동안만 누릴 수 있는 한정된 은총이다. 부부는 두 개의 시곗바늘과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두 개의 바늘 중 어느 한 개가 고장나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처럼 어느 한 쪽이 병들거나 세상을 떠나고 나면 가정의 행복도 동작 정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정말 소중한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인간은 공기가 없으면 단 10분도 살아갈 수 없지만, 평소에는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이다.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일상 속에 묻어 버리고 살아간다. 그러다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날을 맞이하고 나서야 회한의 슬픔에 젖는다.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가 있다. 곁에 있을 때 잘해 주어라. 힘 있을 때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 사랑하고 싶어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날이 온다. 배우자를 잃는 슬픔은 더 이상 내가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신비이며 오늘은 선물이라는 말처럼 오늘 내 곁에 있는 내 짝에게 최선을 다해라. 그곳에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