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말보다 더 중요한 언어

[[제1472호]  2015년 8월  29일]
강의를 다니다 보면 우리 부부는 함께 차를 타고 다닐 일이 많다. 부부가 함께 차를 타면 싸울 일도 많아진다. 방향감각과 기억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글쎄, 이 길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내가 이리 오지 말자고 했지. 봐,꽉 막히잖아. 강연 시간 늦었는데 어떻게 할 거야?”

서로 짜증을 부리고 원망을 하고 삐쳐서 말을 안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강연장에 도착하면 웃으면서 들어가야 하니 우리는 일 때문에라도 풀어야 한다. 요즘에는 네비게이션이 다 알아서 길 안내를 해 준다. 세상 참 좋아졌다. 네비게이션은 친절하게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하고는 다시 길을 안내한다. 가르쳐 준 길로 안 갔다고 화를 내는 법도 없다.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가르쳐 준다. 정말 착하기도 하다.

이럴 때마다 나는 아내 들으라고 농담처럼 한 소리 한다. “내 아내도 이렇게 토 달지 않고 상냥하게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아내는 이렇게 반응한다. “아이고, 나도 그러고 싶어요. 기계처럼 아무 감정이 없다면야 왜 안 그러겠어?” 부부간의 대화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물건과 달리 사람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감정이 실리기 때문에 싸움이 되고 갈등이 생겨난다.

대화를 나눌 때 대화의 내용이 사람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은 7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한다. 반면 말에 실린 감정이 끼치는 영향은 38퍼센트나 된다. 몸짓이나 얼굴 표정 같은 비언어적인 표현이 주는 영향은 무려 55퍼센트나 된다. 그러니까 말하려는 내용보다 그 말을 담는 그릇, 즉 목소리, 억양, 몸짓, 얼굴 표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이게 뭐야?” 한다면 그냥 단순하게 묻는 것이 된다. 애교를 섞어 “이게 뭐야?” 한다면 어리광 부리고 싶다는 표현이 될 것이다. 감탄하듯 “어머나, 이게 뭐야?” 하고 묻는다면 놀라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이게 뭐야?”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면 나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게 뭐야?”라는 말 한 마디에 어떤 표정과 몸짓, 목소리가 따르느냐에 따라 그 안에 담긴 뜻은 천차만별이 된다.

좋은 말을 걸러서 아름다운 표정과 순한 목소리에 실어 말할 때 비로소 훌륭한 대화가 된다. 때론 아무 말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마주 잡은 손 하나로 온 마음을 주고받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농아인 부부가 말 못해도 누구보다 사랑하며 사는 잉꼬부부도 있다. 두 마음의 완전한 교감은 말 없는 말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 사랑하는 아내에게라도 언어가 아닌 사랑의 몸짓 표정을 지어보자. 부부의 삶에서 말없이 통하는 교감이야 말로 향기로운 꽃과도 같다. 바로 그것이 소통이고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