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말 많은 아내, 말 없는 아내. 결혼 전 장점이 결혼 후 단점으로

[[제1476호]  2015년 9월  26일]

“딩동”

초인종 소리.

아내가 반갑게 남편을 맞이한다. 그러고는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옷도 채 갈아입기 전에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 낸다.

“여보, 김 과장 딸 어느 대학 갔대요?” “으응, 떨어졌대.” “오늘 옆집 개가 강아지를 다섯 마리 낳았대요. 한 마리 달라고 할까요?” “맘대로 하구려.”

아내는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떠들어 대지만 남편은 영 시큰둥하다.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아내의 수다에 남편은 피곤할 뿐이다.

“여보, 저녁은 언제 줄 거요?”

그제서야 아내는 저녁을 차리기 시작한다. 저녁을 차리면서도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다. 온종일 업무에 지친 남편은 계속되는 ‘참새 아내’의 수다에 그만 질렸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딩동”

다시 초인종 소리.

아내가 문을 따 주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뭐 기분 나쁜 일은 없었는지, 남편의 안부 따윈 안중에도 없이 드라마에만 빠져 있다. 남편은 아내의 무심함이 야속하기만 하다. 묵묵히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여보, 저녁은 언제 줄 거요?”

드라마에 빠진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지 못한다. 부아가 치민 남편이 언성을 높인다.

“밥 달라니까!”

그제서야 아내는 어슬렁어슬렁 주방으로 간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 식탁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 늘어놓는다. 놓고는 다시 텔레비전 앞에 가서 앉는다. 남편은 식탁에 혼자 앉아 외롭게 저녁을 먹는다. 그러면서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내가 어쩌다 저런 곰 같은 여자와 살게 되었나. 좀 애교 있고 상냥한 여자와 살아 봤으면…….’

이 남편은 ‘곰 아내’의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 결혼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조용함이 지나쳐 집 안은 적막강산처럼 썰렁하기만 하다. 결혼 전에는 장점으로 보이던 아내의 성격이 막상 결혼 생활에서는 단점으로 변한 것이다.

결혼 전의 장점은 대부분 단점으로 변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람의 환상이 깨지면서 배우자를 바라보는 내 시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변한 것이다.

원래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똑같은 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좋게 보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배우자의 단점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느껴질 땐 돌이켜 보자. 사실 변한 것은 나 자신이다. 예전의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사람을 열렬히 사랑했던 것이다. 말 많은 아내도 곰 같은 아내도 모두 틀린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를 뿐이다. 그리고 내가 변한 것이다. 그래도 그 여인이 최고의 내 노후복지 시스템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