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자연인으로서 만나라
[[제1502호] 2016년 4월 30일]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가. 한 쌍의 연인이 맨발로 모래밭을 달리며 놀고 있다. 여자가 모래밭 위에 큰 글씨로 “자기, 사랑해”라고 쓴다. 이때 파도가 밀려와서는 여자가 써 놓은 글씨를 싹 지워버린다. 여자는 밀려가는 파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한껏 토라진 목소리로 연인에게 말한다.
“미워 미워. 자기야. 저 바닷물 좀 때려 줘!”
정말이지 닭살 엽기 행각이다. 그러나 남에게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런 행동도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는 다시없을 추억이요, 아름다운 로맨스다.
한번은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거리에서 서로 부르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남편이 “내 작은 병아리! 이리 좀 와 봐!”하니까 아내가 “왜? 내 사랑스런 분홍 돼지!”하며 뛰어가는 것이었다. 온몸에 닭살 소름이 돋을 만큼 느끼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서로를 그렇게 부르면서 두 사람은 부부간의 사랑과 행복을 맘껏 누리는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렇다면 부부도 가정에서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의 아내가 집에서 남편을 대통령이라고 부를까? 장로를 집에서 아내가 장로님이라고 부를까? 아니다. 여보이다. 아나운서의 아들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빠, 배 아파요”하는데 “발음 똑똑히 해. ‘배’가 아파, ‘베’가 아파?”하며 시간을 끌다가는 경을 치기 십상이다.
바깥에서의 직업과 지위가 어떠하든 집에서는 모든 것을 벗어놓고 자연인으로 순수하게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관계가 불편하게 경직된다. 특히 부부는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이여야 한다.
부부는 둘만의 로맨스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부부 사이에는 남들이 넘볼 수 없는 비밀의 낙원이 있어야 한다. 그 비밀의 낙원 안에서라면 두 사람은 얼마든지 유치해도 좋다. 부부란 유치한데서 정이 드는 것이다. 문제는 연애 시절과 신혼 시절엔 곧잘 낯간지러운 닭살 행각을 벌이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무덤덤해진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애정 표현은 점차 강도가 약해지다가 마침내 소 닭 보듯 썰렁해진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로 존재할 뿐 둘 사이의 로맨스는 빛바랜 추억으로나 남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달링’, ‘허니’를 외쳐대는 서양 부부들에 비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부부간의 애정 표현이 서투른 것이다. 부부가 손을 잡고 걷다가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슬그머니 손을 놓아 버린다. 다른 사람 앞에서의 애정표현은 어쩐지 남세스럽다는 것이다. 친밀한 배우자에 대한 배려보다 남의 시선을 더 의식하는 눈치 문화다.
그러나 체면을 차리고 점잖을 떨어서는 부부간에 한껏 애정을 나누기 어렵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내를 ‘내 작은 병아리’라고 부르고 남편을 ‘사랑스러운 분홍 돼지’라고 부르며 맘껏 유치할 수 있는 부부가 금실이 나쁠 리 없다. 남들로부터 ‘닭살 커플’이라는 놀림을 받으면 좀 어떤가. 부부는 법적으로 공인된 커플이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부부의 애정을 한껏 표현해 보자.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표현되는 사랑이 아름답다.
여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