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사랑의 호르몬 | |
[[제1627호] 2019년 1월 19일] | |
셰익스피어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린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서 ‘사랑의 꽃즙’을 등장시킨다. 이 꽃즙을 잠든 사이 눈꺼풀에 살짝 발라 두기만 하면 잠에서 깨어나 맨 처음 본 상대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 꽃즙 때문에 요정나라의 아름다운 왕비는 흉측한 당나귀 탈을 쓴 어릿광대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로스의 화살에 맞을 때 사랑이 시작된다고 한다. 에로스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기 모습을 한 채 작을 활을 가지고 다니며 아무 때나 핑핑 사랑의 화살을 날린다. 에로스가 겨우 장난으로 쏘아대는 화살에 맞아, 사람들은 목숨을 건 끔찍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녀가 열렬한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렇게 마법과도 같은 특별한 힘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feel’이 꽂혀야 한다. ‘feel’을 우리말로 옮기면 ‘느낌’ 혹은 ‘감정’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정확한 말이 있다. 바로 ‘콩깍지’다. 눈에 콩깍지가 끼어야 사랑이 시작된다. 콩깍지가 곧 마법의 꽃즙이요, 에로스의 화살인 것이다. 그런데 이 ‘콩깍지 이론’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호르몬이 생성된다. 바로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껴안고 싶은 충동과 성욕을 느끼게 된다. 이 호르몬은 마약과 같아서 합리적인 이성을 마비시킨다. 호르몬이 지속되는 기간은 3년 정도인데, 그 기간 동안에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상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콩깍지 낀 눈에는 애인이 백마 탄 왕자요, 신데렐라로 보이는 것이다. 이리하여 ‘환상(에 빠진) 커플’이 생겨난다. 진실이 가려지긴 하지만 콩깍지가 없었다면 인류는 벌써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누가 말짱한 정신과 합리적인 이성을 지닌 채 사랑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이 콩깍지가 벗겨져 나가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데 있다. 밤 12시를 알리는 종이 치면 마법은 풀리고 신데렐라의 마차는 늙은 호박으로 되돌아온다. 호르몬의 생성이 중단되고 사랑의 유통기한도 끝이 난다. 그와 동시에 상대의 결점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치약을 중간부터 눌러 짜서,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아서,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서, 코를 골아서, 이를 갈아서, 비위가 거슬리고 싫증이 난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맞는 게 없다. ‘저 사람이 내가 사랑한 사람이 맞나?’ ‘아이고, 도끼로 내 발등을 찍었지.’ 이렇게 ‘환상커플’은 ‘환장(할) 커플’이 되고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3년에 한 번씩 배우자를 갈아치우며 살까? 바꾸어 봤자 그놈이 그놈이다 이 여자 저 여자 곁눈질하고 침 흘려 보지만 지구상에 본처와 같은 후처나 저 여자는 없다. 언덕 피하려다 괜히 태산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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