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자의 아내
(사)가정문화원
원장 김 영 숙
사모가 아니라 아내다
젊었을 때 신학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반듯하고 단정해 보여서 호감이 갔지만 목사의 아내가 될 것을 생각하니 영 자신이 없어서 한 번의 데이트밖에는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목회자의 부부생활도 보통의 부부처럼 지지고 볶는 비슷한 삶이란 걸 왜 몰랐을까 싶다. 그러나 목회자의 아내의 삶이라면 좀 다를 것 같다. 사모는 목회자의 사역파트너인게 맞지만 한 남자의 아내지 사역자만은 아닌데도 많은 짐이 그 가녀린 어깨에 매달려 있다. 사모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 책임감, 소명감, 게다가 높은 도덕성가지 요구받으니 그 스트레스를 누가 알까? 모두가 주목하는 사람일 때 개인적으로 겪는 심리적 압박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목회자에게도 아내는 사모가 아니라 “아내”다. 자기 아내를 사모라 부를 일이 아니라 “내 아내”라고 지칭하는 것이 옳다.
남편의 목회현장은 늘 바쁘고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우선이다 보니 아내는 뒤로 밀리는 때가 허다하다. 그래 여자로서의 아내는 가슴이 시리고 상처를 받게 된다.
사실 목회에서 성공했다 해도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은 가정이다. 아무리 큰 성공을 했다 해도 이것을 함께 나누고 누려야할 아내나 자식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어떤 소명이나 성공보다 가정에서의 행복을 더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아내는 남편이 내 편일 때 행복하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에 목숨을 걸고 산다. 남편이 나를 이해해주고 배려해 주고 믿어주어야 한다. 성도들 앞이나 식구들 앞에서도 마음으로 응원해주며 슬쩍 내편이 되어줄 때 안정감을 느끼고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남편이 내편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아무리 힘든 일도 다 견뎌내는 것이 여자다. 남편이 확실히 내 편이기 때문에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지 않는다.
남편이 아내를 만만하게 여겨 내가 어떻게 대해도 비밀이 보장될 수 있는 상대로 생각하고 목회 스트레스를 해소할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남편의 불행이자 아내의 불행이다.
무시하고 무례하며 버럭 버럭 소리나 질러대면 아내는 주눅 들고 열등감이 생긴다.
소명감이나 삶의 의욕은 떨어지고 남편과는 마음으로부터 소원해진다. 아내가 내 편(팬)이 되고 지지자가 될 때 남편도 행복한 법이다.
아내가 행복해야 목회도 행복하다.
가정에서는 아내가 행복해야 한다. 남편은 밖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성취나 혹은 대인관계를 통해 행복할 일이 많지만 아내는 남편의 말 한마디 혹은 눈빛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존재이다. 물론 남편도 아내의 지지와 격려와 존경이 필요하다. 목회가 잘되고 능력을 발휘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을 받을 때 자신감이 넘치지만 아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중요하다.
밖에서 많은 것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아내의 지지와 격려, 그리고 칭찬이 없으면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는다. 나폴레옹이 많은 것을 성취하고 황제가 되었지만 그의 콧대 높은 아내 조세핀의 조롱 때문에 그의 최후가 비참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아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남편의 최후의 자존심만은 지켜주어야 한다. 사랑받는 아내는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다.
남편은 자기 사역으로 바쁘고 보람있고 행복하겠지만 아내는 외롭고 쓸쓸할 수 있다. 언제나 기다려야하고 참아야한다. 자신의 아픔을 쉽게 나누기 어려운 위치인 것도 힘든 일이다. 우울감과 불행감이 수시로 교차할 것이다.
남편이 목회에 성공할수록 아내는 더 외로워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남편의 성공의 열매를 함께 누릴 수 있긴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멋진 성공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더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지지하고, 위로할 때 가정은 행복을 느끼는 곳이 될 것이다. 목회의 1차 사역 대상자는 아내다.
– 김영숙 (사) 가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