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 같은 며느리
딸 같은 며느리가 가능할까? 이 바람은 시어머니들의 로망(Roman)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철없는 시어머니의 노망(老妄)일 수 가 있다.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이다. 딸이 아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딸 같기를 바라니 실망이고 서운한 것이다. 내가 낳아 기른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가 정서적으로 같을 수가 없다. 그것을 기대해도 안된다.
지난 연말 친지로부터 이불 선물을 하나 받은 일이 있다. 품질이 너무 좋았다. 그래 자녀들에게 주려고 3개를 별도로 구매했다. 마침 막내딸이 집에 들렀기에 하나를 주었다. 포장을 풀어 보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무늬가 아니란다. 주는데로 받아갈 일이지 얻어가는 주제에 무슨 감놔라 배놔라해. 그런데 딸이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내 침대에 덮인 이불을 훌러덩 걷어가지고 나온다. 그것을 개지도 않고 그냥 구겨서 끌어안고 집을 나간다. 그것을 보고 내 아내와 둘이서 한참 동안 웃었다. 저년이 딸이니까 저렇게 하지 부모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이게 좋다며 제 마음대로 이불을 훌러덩 걷어가지고 나가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밉지가 않았다. 저게 딸이니 그렇지 며느리라면 어디 언감생심이랴.
딸한테는 때로 지적을 하고 꾸중을 해도 상처가 되지 않는다. 지우개로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느리한테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며느리한테는 지우개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상처가 평생을 간다.
고부는 아들을 통해 법으로 엮인 관계이다. 그래 권리와 의무도 따른다. 영어로 며느리는 daughter-in-law이고 사위는 son-in-law 라고 한다. 아주 절묘한 표현이다. 법과 제도로 엮인 관계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어머니 아버지가 아닌 분을 어머님, 아버님 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혼은 내 아들이 짝을 만나 시원하게 둥지를 떠난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일 아침에 깨우거나 양말, 팬티 빨아주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며느리한테 감사한 일이다. 오손 도손 고부관계를 사이좋게 지내는 훌륭한 가정들도 많다. 흔히 며느리가 딸 같다고 한다. 딸 같다는 것이지 사실 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또 그것을 기대해서도 안된다.
친정어머니가 연로해서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딸은 가슴이 아프고 시리다. 그리고 걱정을 한다. 그러나 며느리는 그런 소식을 들으면 머리가 아프게 된다는 말이 있다. 돈이 들어가야 하고 수발도 해야 되니까. 상갓집에 가보면 극명하게 딸과 며느리가 구별된다. 슬프고 서럽고 서럽게 목이 메여 통곡하는 여인이 있다. 관에 매달려 울부짖으며 서럽게 오열한다. 한눈에 봐도 딸이다. 그런가하면 조금은 뻘쭘하게 뒤쪽에서 슬픔을 짓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며느리이다.
부모가 온효자 해야 자식이 반효자 한다고 한다. 효자, 효부는 부모가 만든다.
고부관계도 그렇다.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감정적으로 얽힌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어려운 사이이다. 그러나 딸 같이 대하자. 딸 같은 며느리가 될 수 있다. 내가 기른 딸이 소중한 것처럼 들어온 딸도 귀하고 소중하다. 잘 들어온 며느리 하나가 10딸 보다 좋을 수 있다. 너무 까칠한 시어머니도 피곤하지만 너무 오냐오냐 하는 시어머니도 문제다. 지금은 아들 딸 구별 말고 자녀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노후 대책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나 자녀들아, 부모를 공경하고 깍듯이 모셔라.
그것이 상속에 관련이 되고 네 자녀들에게도 최고의 효도 교육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