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부모로부터 떠나라

[[제1508호]  2016년 6월  11일]

캥거루족, 헬리콥터 부모, 패러사이트싱글, Kippers 라는 단어가 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고초당초 맵다 한들 시집살이보다 더할 소냐.”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으면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을까? 옛날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무조건 ‘장님 3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세월을 견뎌 내라고 가르쳤다. 시집살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한 나름의 지혜였던 셈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시집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한 딸자식이 친정으로 되돌아올까 봐 모진 엄포를 놓은 것이다.

시대가 변해서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고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대하는 며느리들도 많다지만, 시집 문제로 인한 결혼 생활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부 갈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이브가 장수한 것은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고부 갈등은 아들이 부모의 소유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특히 자녀지향적인 여자들은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을 다른 여자에게 내줘야 하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하면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긴 것 같은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

‘온갖 고생을 다해서 키워 놓았더니 호강은 엉뚱한 네가 하는구나.’

자녀에게 의존적인 부모일수록 이런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애지중지 키워 놓은 새가 품에서 날아가 버린 것 같은 허전함, 즉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이다. 반면 금실이 좋은 부부지향적 부모들은 자녀를 떠나보내고도 활기차고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누린다.

고부 갈등은 아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자식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생각을 조금만 바꿔 보면 며느리는 자신의 무거운 짐을 덜어 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동안 밥이며 빨래며 힘들게 해 왔던 자식 뒷바라지를 이제 며느리가 도맡아 해 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자녀가 결혼한 후에는 부모는 옆으로 비켜 주어야 한다.(Beside).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Not between). 자녀가 독립된 가정을 이루었는데도 부모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문제가 생겨난다. 자녀가 결혼하면 부모는 자녀로부터 떠나야 한다. 떠난다는 것이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집에 살거나 옆집에 살아도 떠날 수 있다. 반면 미국에 살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녀 역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면 부모로부터 떠나야 한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독립해야 한다. 부모를 떠나지 못하니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고 갈등하게 된다. 효자 남편하고는 살기 힘들다거나, 못생긴 건 용서해도 마마보이는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삼강오륜 가운데 ‘부자유친, 부부유별’이 있다. 이것은 유교적 도덕관을 중요하게 여기던 시대에는 삶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이다. 21세기에는 삼강오륜도 새롭게 적용해야 한다. 오늘날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면 부자는 ‘유별’하고 부부는 ‘유친’해야 한다.

부모들이여, 자식을 떠나보내라. 그리고 스스로 삶을 즐기며 살아라.

자녀들이여, 부모로부터 떠나라. 그래서 독립된 가정으로 온전히 홀로서기를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