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방식의 차이가 가정을 냉랭하게 만든다. 나는 운전면허시험을 한번에 패스했다. 내 아내는 6차례나 시험을 치르고서야 겨우 면허증을 딸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놀렸다. “6차례나 면허시험을 본 우스운 사람이군.” 아내의 응답도 만만찮다. “그건 우수한 사람이라고요.”
아내가 4번째 시험을 봤을 때다. 퇴근하자마자 “오늘 어떻게 되었지?”하고 물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봐도 합격되었다는 것인지,떨어졌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운전면허 시험관에 대해서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한참 들어보니 내용인즉 떨어진 것이다. 그냥 떨어졌다고 말하면 될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간접화법까지 쓰니 남자들은 더욱더 알아들을 수가 없다. 들어보니 면허시험관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은 아내의 운전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진 것이다.
아내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는 조언을 했다. “운전연습을 더 한 후에 다시 도전해보라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갑자기 아내의 태도가 거칠게 돌변했다. 나에게 갑자기 불평을 털어놓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면허시험관이 불평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나로 바뀐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나는 황당했다. 아내를 위해 한 마디 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이해가 안됐다. 나는 해결책으로 조언을 한 것뿐이다.
뒤에 안 사실. 아내는 자기가 낙방한 감정을 공감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들으면서 공감만 해주었으면 될 일을 정답을 제시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여자들은 감정 공유어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문제 해결어법을 쓴다. 그러므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대답을 한다. 남자들은 아내가 무슨 말을 하면 도와달라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해결책과 정답을 말한다. 그러나 남성들이 말하는 그 정답은 정답이 아니고 틀린 것이다. 정답은 맞장구치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니 남자들이 수모를 당한다.
남편들이여,아내가 조금은 이해가 안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크게 고려치 말라. 중간에 섣불리 끼여들지도 말라. 그대로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어라. 그리고 공감만 해주어라. 주의할 점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듣는다고 구박을 당한다. 중간중간에 감탄사를 한 마디씩 보태어야 한다. “그래,안됐구나”“서운했겠구나”“그렇구나” 등. 그렇게 되면 가정에는 평화가 깃들고 이 땅에 전쟁도 없을 것이다.
두 상 달 가정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