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는 태도를 보면 부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여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10초도 안되어 끊었다면 그 여인은 누구일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것은 분명 아내다. 무표정하게 감정도 없이 “그래 알았어”하면 끝이다. 저쪽에서는 말을 더 하려고 하는데 이쪽에서는 벌써 끊었다. 만일 연인 사이라면 표정이 달라질 것이다. 웃음 띤 얼굴로 통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먼저 끊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때 나도 전화를 받으면 아내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젊은 여자지?”하며 다그친다. 젊은 여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내 모습이 달라 보이는 모양이다.

한번은 목회자들만의 세미나가 있었다. 거기서 한 사모의 한맺힌 눈물을 보았다. 울먹이며 그동안 차마 드러내지 못한 상처들을 토로하며 회복을 이룬 이야기다. 남편 목사님은 온종일 여러 가정을 심방했다. 심방하는 가정마다 말씀을 전해야 한다. 가족상황도 파악해야 하고 가족 이름도 챙겨야 한다.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집집마다 각종 주스와 차를 대접받는다. 과일도 나온다. 안 먹을 수도 없다. 온종일 심방을 마치고 나면 배는 금붕어처럼 불룩해지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 기진맥진이다.

집에 들어오자 아내가 인사를 한다. 들은 체 마는 체 무시하고 방에 들어가 누워버린다. 얼마 있다가 여자 집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전화 받는 모습이 조금전 들어올 때와는 사뭇 다르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는 모습이더니 생기가 돈다. 친절한 목소리에 상냥하기 이를 데 없다.

여자 집사와의 통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화가 났다. “내가 인사할 때는 기진맥진 들은 체도 안하고 모른 체하더니 그래 잘 한다 잘해.” 아내는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런 것이 쌓이다 보니 한이 되었다. 상처가 통곡으로 터져나왔다. 울먹이며 한을 터뜨렸다.

사모가 행복해야 성도가 행복하다. 목회자 가정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목회자 가정의 희생이 목회 성공으로 이어지는 시대는 끝났다. 가정의 희생이 직장 성공으로 통하던 시대도 끝났다. 남성수심(男性獸心). 남자들의 성정에는 동물적 정서와 심성이 있다. 동물은 평상시 암컷을 소 닭보듯 한다. 그러나 발정기가 되면 교언영색을 부리며 암컷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평상시에도 아내에게 따뜻한 배려와 사랑의 표현을 하는 남편이 필요한 것이다.

두 상 달 가정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