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은 부모가 쏜 화살이라고 한다. 부모는 활이고 떠나간
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노년을
슬프게 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순회강연 중 만난 P박사.
그는 서울에서 일류대학을 나와 결혼을 하자마자 유학을 가
석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그곳에 정착한 사람이다.
그의 부모를 내가 안다. 귀국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소식을
전했다.
반가운 소식을 얼마쯤 듣다가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그래요, 우리 늙은이 둘이만 지금 살고 있어요. 둘이 살다가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나겠죠, 그리고 혼자 살다가 얼마 있으면
그마저 또 가야죠.”
너무나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자신에
대한 한탄뿐이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처량하게 들렸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오매불망
그 아들이 잘돼서 돌아와 부모 봉양하기를 바랐지만 그게
아니다. 찾아오지도 않는다. 어쩌다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어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쪽에서 전화 한번 걸어오는 일이
없다.
자기들 살기가 바쁜가보다. 부모의 용도는 폐기되었는가.
부모를 챙기지 않는 세대다.
“3번아, 5번은 간다.”라는 말이 있다.
시골에 사는 부모가 모처럼 아들 집에 찾아갔다. 며칠 있다
보니 거추장스럽고 천덕꾸러기 같다. 귀함 받은 최우선 순위
서열이 있다. 첫째는 손자다. 둘째는 며느리, 셋째가 아들,
넷째는 강아지, 그리고 다섯째가 부모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가장 꼴찌가 된 것이다. 며느리나 손자,
아니 강아지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찬밥 신세다.
그래서 아들에게 “3번아, 5번은 간다” 하고 되돌아갔다는것이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한다. 자녀의 효도기간은 4세까지라고
한다.
4세까지 효도의 90%를 한다는 것이다.
자식농사 잘 지었다고 말들 하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느
냐고 반문한다. 부모는 진땅 걸어가도 자식은 마른 땅
걸어가기 바라는게 부모다.
평생을 바쳐 희생하는 것이 부모다.
오직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삶 전체를 바쳐 뒷바라지를
했다.
바로 그것이 노후보장과 보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오늘의 중년은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며 또한 자녀로부터 배척받는 1세대이다.
그것을 모르고 노년을 맞이하면 초라하다.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 노년을 스스로 준비해라.
가정문화원이사장
두 상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