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주부들은 병을 앓는다.

시댁에 가서 겪을 육체적ㆍ정신적 피로에 걱정이 앞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하면 불안, 초조, 위장장애, 우울증까지 이어진다.

소위 말하는 명절증후군이다.

요즘엔 며느리뿐 아니라 자녀들도 진학과 취업, 결혼 등의 질문에 힘들어한다.

명절을 거듭하면서 이런 고통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기다렸던 명절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산업화 이후 핵가족의 개인주의 문화가 가족의 정을 약화시켰다.

정다움과 그리움보다 자기중심적 개인주의가 전통적 가족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어릴 적 명절을 떠올리면 아련하게 묻어나는 추억이 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 명절은 기대와 설렘보다 가족들간에 신경을 많이 써야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도 이때다.

즐거운 날이 괴로운 날이 되기도 하고, 해묵은 가족간의 갈등이 표출되기도 한다.

비용 분담, 일 분담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장보기와 차례상 준비 등 요리는 주부들 몫이다.

음식점에는 남자 주방장도 많건만 집에서는 왜 여자들만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일까.

여자들도 더 이상 섬김과 보람이 아니라 `왜 나만 고생해야 하는가` 억울하다.

`돈이 있어야 효도 한다`는 생각에 남편들도 경제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직장생활로 피곤해 하는 며느리 눈치 보랴 음식 준비 하랴` 시어머니도 마음이 바쁘다.

1년에 서너 번 만나는 사촌 관계는 옆집 친구보다 깊이가 얕다.

`그래도 만나야 했던 가족`이 매스컴의 스트레스 보도에 `꼭 만나야 하는가` 의문이 생기고 행동 빠른 일부는 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세월이 변해도 고향은 변하지 않는 곳이다.

힘들고 버거울 때면 그리워지는 곳. 언제 찾아가도 따뜻한 위로와 치유를 주는 곳.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새 힘을 얻게 해주는 곳. 그것이 바로 한국인이 마음 속에 담긴 고향상이다.

낯선 타향에서 외롭게 경쟁하다 찾아가는 고향은 명절의 전통과 풍속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잃어버린 안식처를 확인하고 가족 속에 자기 정체성을 찾는 시간이다.

가족이란 가장 단순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얽힌 애증의 관계다.

때로는 소원하고 서운하면서도 애처로움과 가슴 아픈 연민이 뒤섞여 있는 게 가족이다.

부쩍 늙고 기력이 쇠한 부모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복잡한 연민에 가슴 뻐근하다.

할아버지 닮은 손자의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핏줄에 엉겨붙는 격랑 같은 뜨거운 정을 느낀다.

직장생활하랴 애들 키우랴 아등바등 사는 며느리의 거친 손을 보면 그저 안쓰러워 마음이 짠해진다.

새 식구로 들어온 사위가 든든한 아들 몫을 해내노라면 `우리 사위가 최고`란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번 명절에는 일을 분담해보자. 형제간에 그리고 남자들도 요리와 설거지를 해보자. 그리고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일을 즐겨라.

명절은 스트레스가 아니다.

노동보다 함께 즐기는 축제이며, 돈보다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와 정성이 더 값지다.

어색한 친지 관계보다 따뜻한 배려와 감정 공유가 행복이고 우애다.

부모, 처자식간 손잡고 바라볼 수 있는 명절이 우리가 꿈꾸는 명절, 고향에서 맛보는 행복이다.

고향이 없는 자, 고향을 잃어버린 자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