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로부터 떠나라
(고우경제 2011년 겨울호)
3대 불가사의가 있다. 첫째 퇴직한 남편 예쁘게 보아주기, 둘째 결혼한 아들 내 아들 만들기, 셋째 앙드레김(고인) 색깔 있는 옷 입히기 라고 한다.
결혼한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다. 다른 여자의 남편일 뿐이다. 삼강오륜의 윤리가 가정을 힘들게 만든다.
< 역 삼강오륜>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회자되었다. 삼강오륜의 ‘부자유친(父子有親)’과 ‘부부유별(夫婦有別)’ 은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가정을 힘들게 한다. 현대의 패러다임은 부자유친이 아니라 부자유별이다. 부부는 하나 되어야 하고, 부모는 이제 자녀로부터 떠나야 한다. 바로 역(逆)삼강오륜이다. 떠나지 못함으로 고부갈등이 생기고 자녀들을 힘들게 만든다. 우리의 ‘한(恨)’이라는 용어는 5000년 동안 여인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의무만 있었지 권리는 없었다. 이 땅의 여성들은 오랫동안 무시당하고 사람대접 받지 못했던 한 맺힌 삶을 살아왔다. 한 세대가 아닌 5천 년 동안 부당하게 대우받은 서러움이 맺혀있다. “고추당초 맵다한들 시집살이 보다 더 할 소냐” 얼마나 시집살이가 혹독했으면 그랬을까. 오늘날에는 그런 시집살이를 시키는 부모는 드물다. 또 힘 있는 부모들은 결혼한 자녀와 동거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고부갈등은 상존한다. ‘못생긴 며느리 제삿날 병난다’라는 말이 있다. 눈 밖에 난 며느리가 미운 것이다. 며느리를 몸종쯤으로 생각하는 가정도 있다. 마음대로 부리려 하는데 잘 되지 않으면 미울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며느리는 시댁에 갈 때면 늘 머리가 아프다. 시댁이 밉고 싫어 ‘시’자만 봐도 혈압이 오른다. 시댁에 가기 싫어지는 것은 가 봐야 소외당하고 자기 입장에서 편들어주는 사람도 없다. 며느리 대접 못 받고 내편이 없는 것 같아 늘 서운하다. 사랑은 편들어 주는 것인데 그것이 없으니 서럽다. 모처럼 나선 길, 시댁에 가면서 싸우고, 오면서 또 싸운다.
< 부모는 옆으로 비켜주어라>
고부갈등은 아들을 내 것으로 생각하는 세대의 갈등이자 문화의 갈등이기도 한다. 자녀가 결혼한 후에도 홀로서기를 시키지 않고 밤늦게까지 데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시집 보낸 딸을 지나치게 감싸고 조정하려는 부모도 있다. 자녀의 행복을 깨는 리모컨 부모들이다. 딸을 사위의 품에 보내주고 아들을 며느리 품에 안겨주는 것이 올바른 자식 사랑이다. 아들 배후의 부모이기를 포기하라. 자녀가 결혼하면 독립된 가정이다. 독립될 때 질서가 생기고 가족관계도 좋아진다. 조정이나 간섭이 아니라 후원자와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효자, 효부는 좋은 부모가 만들고 좋은 시부모는 좋은 며느리가 만든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잃으면 아들도 잃는다. 내 아들로 두고 싶으면 며느리 마음을 잡아라.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밖에 나가서, “며느리가 우리 집 복덩어리야.” 그렇게 말하며 다녀 보아라. 그 말이 돌고 돌아 며느리 귀에 다 들어간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 서운한 것도 다 풀리고 효부가 될 수 밖에 없다.
시집 보낸 딸을 떠나보내지 못함으로 자녀의 행복을 깨는 친정부모도 있다. 결혼을 하고나면 가장 친밀한 관계는 친정식구가 아니라 남편이 되어야 한다. 자녀가 결혼한 후에 부모는 옆으로 비껴주어야 한다. 그 사이에 끼어들면 안된다. 영어로는 ‘Not between but beside’인 것이다.
결혼은 독립된 한 가구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독립시키지 않고 부모들이 개입함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혹자는 아침밥이나 먹여서 출근 시키는지 채근하기도 한다. 설마 제 신랑 굶겨 죽이겠는가. 노파심을 버려라. 아니면 며느리로부터 이 말을 들을 수 있다. “어머니, 이젠 어머니 남자나 챙기세요”
부모들의 섣부른 간섭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조화를 이루어 가는데,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기 마련이다. 아웅다웅하며 자기들끼리 살아간다. 그것들이 본인들에게 별 문제가 아닌데도 부모들이 관여하거나 끼어들므로 문제가 커지거나 감정이 상해 파경을 맞은 경우가 많다.
정상적인 부부들은 부딪히고 꼬이기도 하였다가 풀리고, 모난 부분들이 줄어들면서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조화를 이루어간다. 부부간의 갈등을 통해 성숙해 지는 것이다. 부부간이야말로 가장 좋은 인간관계의 훈련장이다.
< 며느리는 내가 잘 해주어야 할 또 다른 딸>
모성이 강할수록 자녀의 행복을 깨기도 한다. 장가보낸 후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며느리를 시기하는가 하면, 아내를 사랑하는 아들을 미워하는 시어머니도 있다. ‘시어머니 부를 노래, 며느리 먼저 부른다’라는 말이 있다. 며느리가 미운 것이다.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네가 들어와 호강을 하느냐”
어떤 여인은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긴 것 같은 서운한 감정에 한없이 서글픔을 느낀다. 자신의 무거운 짐을 덜어준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들의 팬티며 내복과 양말 빨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깨우는 일에 신경 안 쓰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고부간의 사랑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며느리는 내가 잘해 주어야 할 또 다른 딸이다. 딸이라 생각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며느리의 행복이 아들의 행복이고 아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며느리를 귀하게 여기는 시어머니가 존경과 대우를 받는다. 아들로부터 떠난 부모가 효도를 받는다. 흔히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한다. 귀엽고 예쁜 짓하면 예쁨을 받는다. 정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다. 시어머니 존경할 줄 아는 며느리가 귀여움을 받는다. 귀여움 받는 며느리는 용돈이 아니라 상속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