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야기 11월 칼럼>

이혼, 또다른 문제의 시작일 수 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그래도 낫다. 그렇다면 이혼은 어떤가. 이혼은 십중팔구 후회한다. 해 보고 안 해보고 망설일 가치가 없다. 이혼은 당사자들 모두에게 가장 큰 충격이다. 수명이 몇 년 짧아질 만큼 엄청난 스트레스다. 일단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 따른다. 애써 함께 일군 가정경제가 한 순간에 무너진다. 게다가 사랑의 결실인 자녀는 어떤가. 부모 잘못 만나 거저 얻은 끔찍한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이혼 하는 부부들은 자식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같으면 자식을 생각해서 상당부분 참고 넘어갈 일을 요즘은 절대로 참지 않으려 한다. 만연한 이기주의의 소산이란 생각에 착잡하다. 세상이 변하면 가정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바뀐다고 신성한 결혼의 의무마저 쉽게 저버리는 것은 모두를 망치는 일이다.

물론 이혼을 쉽게 결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이혼 사유는 살아보니 그저 안맞고 못 맞추고 살겠다는 이유가 더 많다. 세상에 맞는 사람 골라 살려면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바로 다름의 축복을 모르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나와 다른 것은 축복이다. 부모가 다를수록 건강하고 우수한 자녀가 태어난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보완이 된다. 나와 똑같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다. 또 다르기 때문에 서로 끌렸을 것이다. 다름이 좋아 결혼 했는데 달라서 못살겠다고 한다. 연애시절 갖었던 초심을 늘 되새긴다면 다름이 미덕으로 느껴질 것이다.

배우자를 바꾼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에 이혼을 생각한다. 이런 기대 심리 때문일까? 유명한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무려 여덟 번이나 결혼을 했다. 최고의 배우, 사업가, 에술가, 대부호, 심지어는 트럭기사까지, 상대의 직업도 다양했다. 그러나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모두 실망만 안겨 줄 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타계하기 전까지 15년 이상을 개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 후회하는 이혼자들>

개가 남자보다 더 좋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개는 때 맞춰 먹이를 주고 귀여워해 주기만 하면 된다. 화날 때 화풀이를 좀 한다고 해서 주인의 뜻을 거스르지도 않는다. 두 남자 혹은 두 여자와는 함께 못 살지만 개는 두 마리를 함께 키워도 뒤탈이 없고 늦게 귀가 하거나 외박을 해도 잔소리 없이 꼬리치며 반겨준다.
사람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만큼은 아니더라도 한 두 번의 재혼에는 너그러운 세상이 됐다. 새로운 삶의 대안으로 이혼이 권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혼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일 수 있다. 문제는 재혼의 성공률이 낫다는 데 있다. 재혼자의 이혼률이 초혼자보다 1.5배 정도 높다. 그러니 ‘첫 번째 배우자와 그냥 살걸’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에서 이혼한 부부가 이혼하고 나니 서로의 매력이 다시 보이기 시작해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혼전에 그런 장점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던 구두가 마음에 맞지 않아 새 구두를 신어 보았지만, 발에 물집만 잡히고 고통만 더 심해진 것이다. 심지어는 언덕을 피하려다 태산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혼이나 재혼이라면 아에 손사레를 치는 이들도 있다.
“아휴, 결혼이 뭐 좋은 일이라고 두 번 세 번을 해요?”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을 처음부터 다시 겪으라고요? 그냥 참고 살랍니다. 바꿔 봐야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요?

부부 사이가 평생 낭만의 레일 위 만을 달려갈 수 는 없다. 사랑과 미움, 애증의 경계선을 달려가는 것이다. 희노애락이 있다. 동거동락(同居同樂)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이 되기도 한다. 둘이 산다는 것은 때로 갈등이 있고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다. 혼자 살면 갈등은 없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맛 볼 수 없다.

옛날 희랍인들은 결혼하는 신랑 신부에게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고 한다. 하늘 아래 수 억의 남자와 여자 가운데 단 한 명의 남자와 여자가 단 한 번으로 끝내야 하는 결혼의 문에 들어선 것을 진정한 삶의 ‘승리’로 여겼기 때문이다.

“행복의 문 열리어라. 행복을 누릴 자 들어 온다”라는 아름다운 합창 소리와 함께 하얀 웨딩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들어오는 신부의 모습은 확실히 환희에 찬 승리자의 모습과 같다.
그런데도 결혼 생활이 불행해 진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배우자가 악하고 나빠서 그런 것일까? 대부분 모르고 서투르고 미숙한 것이 문제다. 평소에 리스크 관리를 안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생활도 기술이고 배워야 한다. 연습도하고 훈련도 받아야 한다.
지구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조금 부족해도 내 배우자가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하며 사는 가정에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