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결혼을 다시 한다면
[[제1434호] 2014년 11월 1일]
부부행복학교를 진행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결혼을 다시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고 싶습니까?”
이 질문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결혼 생활 10년 이상인 아내들의 70~80%는 ‘바꾸겠다’에 ○표를 했다. 반면 70% 이상의 남편들은 ‘바꾸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아내들은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비해 남편들은 둔감해서 그런지 별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당신의 배우자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처 속에 한 맺힌 삶을 살아온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당하고 산 것도 억울한데, 뭘 또 만나요? 그만큼 고통받았으면 됐지 무슨 영화를 누릴 일 있다고 다시 만나요?”
배우자가 이런 대답을 했다면 서글프기만 하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서 설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해 왔는데, 다른 사람을 만나다니요. 그 고통의 과정을 또다시 겪으란 말입니까? 울며불며 맞춰 온 인간이 낫지, 바꿔봐야 그 인간이 그 인간 아니겠어요?”
이렇게 너그러운 아내들도 있다.
서양에 ‘싫증나면 바꾸고 싶은 것이 남편과 가구다’라는 농담이 있다. 사람들이 진실로 값어치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런 넌센스 퀴즈도 있다. 술집에서 기본으로 주는게 땅콩이다. 땅콩과 마누라의 세 가지 공통점이란 무엇인가?
첫째, 공짜이다. 둘째, 심심하면 시도 때도 없이 습관적으로 집어먹는다. 셋째, 다른 안주가 등장하면 거들떠보지 않는다. 다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 속에 묘한 심리적 풍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OECD 국가 가운데서도 이미 최상위권에 속한다. 거의 부부 두세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황혼 이혼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여자 쪽에서 더욱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나선다. 이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산다는 건 사라진 옛 노래가 되었다.
가부장적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던 시절에는 여자들이 인내를 미덕으로 여기며 참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황혼기에 이른 아내들의 권리선언이 그칠 줄 모른다. 그동안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았지만 앞으로는 자신만의 삶을 찾겠다는 것이다.
늦게나마 사람답게 살겠다는 것이다.
이혼은 정신적 공황을 가져올 만큼 삶에 큰 타격을 준다. 특히 황혼 이혼은 여자보다 남자들에게 훨씬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 준다. 여자들에 비해 관계 맺기에 서툰 남자들은 친구나 자식과 속마음을 나누기도 어렵고 자신의 생활을 세심하게 돌보는 일도 어렵다. 고독함에 외롭고 음식을 먹는 일에 어려움이 온다. 오죽하면 “과부 삼 년에 은이 서말이요, 홀아비 삼 년에는 이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을까?
이런 비극적인 종말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까?
“다시 결혼해도 당신과 하겠어요.”
배우자로부터 이런 대답을 듣는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당신의 배우자가 이렇게 대답한다면?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지, 뭐 하러 이 사람을 또 만나요? 두 번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배우자의 대답은 당신 부부를 비추는 거울이다. 당신 부부는 어떤가? 그리고 당신은 배우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