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신혼 초 잡아야지

[[제1446호]  2015년 2월  7일]
“신혼 때 마누라를 확 잡아야 해. 그래야 편해.”

“남편에게 절대 굴복하지 마라. 남편은 길들이기 나름이야.”

그래서 ‘신혼’은 한쪽은 ‘신’나고, 한쪽은 ‘혼’나는 것이라던가. 나 역시 그랬다. 결혼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결혼 전에 내가 주변으로부터 얻어들은 정보라곤 “신혼 초에 잡아야 편하다” “처갓집과 뒷간은 멀어야 한다” “여자와 북어는 두들겨야 한다”와 같은 왜곡된 것들 뿐이었다.

이런 정보 때문에 신혼 초의 부부 싸움은 대개 주도권 장악을 위한 파워 게임이 된다. 이제 막 결혼한 신랑 신부가 둘 사이에서 먼저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확 휘어잡아서 내 입맛에 길들일까 전전긍긍한다. 한마디로 내 몸 하나 편하자고 배우자를 리모델링 하고, 배우자의 인생을 맞춤복 인생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과 습관이 다르고, 무엇보다 성이 다르다.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갈등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서로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갈등이 있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사랑한다고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갈등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장애물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비 온 뒤 땅 굳는다’고 갈등에 슬기롭게 대처한 부부는 더욱 깊고 든든한 관계로 맺어지게 된다.

그러나 부부 간의 파워 게임은 도리어 갈등을 악화시킬 뿐이다. 배우자를 휘어잡겠다니 도대체 무엇으로, 어찌 휘어잡겠다는 것일까? 말로, 완력으로 잡겠다는 것일까? 아내가 혹은 남편이 휘어잡는다고 잡힐 존재일까?

어떤 사람이 신혼 초에 배우자를 자신의 입맛대로 길들이기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첫해에는 이런 점, 두 번째 해에는 저런 점, 세 번째 해에는 요런 점을 뜯어고쳐 보겠다고 마음먹고 계획에 따라 현란한 장단기 전략까지 구사했다. 그 결과 파경 직전까지 가고 말았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부부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생각에 빠져 배우자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한다. 배우자의 약점을 수용하지 않고 기회를 틈타 크게 한 방 먹이려고 든다. 부부가 무찔러야 할 적군인지, 함께 싸워야 할 동맹군인지 도무지 분간을 못한다. 결국 부부 간의 불신은 깊어지고 파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주위 사람들 말만 믿고 신혼 초에 잡으려다가가는 인생 자체가 꼬이게 된다.

물론 신혼 초에 잡아야 할 것이 있기는 하다. 주도권이 아니라 배우자의 마음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잡을까? 힘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로, 관용과 이해로 잡아야 한다.

신혼은 일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기다. 신혼 초 잘못해 준 것은 평생의 상처가 된다. 싸울 때마다 역사적으로 집어낸다. 그런가하면 부부의 사랑이 환상을 벗어나 비로소 현실 속에 자리잡아 갈 때 배우자에게 보여 준 사랑과 이해는 삶의 위기를 이겨내는 평생의 자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