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해답보다는 공감을

[[제1464호] 2015년 6월 27일]
나는 운전면허시험을 한 번에 합격했다. 내 아내는 여섯 번이나 시험을 치르고서야 겨우 면허증을 딸 수 있었다. 여섯 번이나 면허시험을 치룬 여자와 나는 같이 살고 있다. 아내가 자꾸 시험에 떨어지니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네 번째 시험을 보고 온 날은 집에 오자마자 궁금해서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참 하는 이야기를 들어봐도 떨어졌다는 건지, 합격했다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간단히 결과만 이야기하면 될 걸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으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면허시험관에게 마구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떨어진게 확실했다. 너무 까다로운 시험관이 걸렸다는 둥, 사람 신경을 살살 긁으며 약을 올리는 나쁜 사람이었다는 둥, 결국은 시험관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 시험관은 잘못한 일이 없다. 자기 직무에 충실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한마디로 딱 잘라 말했다.

“시험관이 무슨 잘못이야? 당신 운전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진 거지. 학원에 등록해 줄테니 연습을 더해서 다시 시험보라고.”

그런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아내가 갑자기 울고불고 하면서 나에게 마구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의 적이 나로 바뀐 것이었다.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대학시험에 떨어져서 우는 사람은 봤어도 운전면허시험에 떨어졌다고 우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역시 남자와 여자의 어법이 다른 것이 문제였다. 남자들은 대화를 나눌 때 먼저 해답부터 생각하는 편이다. 상대방의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 문제를 해결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반면 여자들에게는 해답보다는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는데 네 번째 시험에서도 떨어졌으니 아내의 속이 얼마나 상했을까? 잔뜩 긴장한 아내에게 깐깐하고 냉담한 시험관의 태도는 또 얼마나 서운했을까? 아내는 남편인 내가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의 어법에 익숙한 나는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얼른 해답을 제시했다.

네 번째도 떨어졌으니 면허증을 따려면 다시 시험을 쳐야 한다는 것을 아내라고 몰랐겠는가. 아내에게 필요했던 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라 나의 따뜻한 위로였다.

“진짜 속상했겠구나. 그 시험관 정말 못됐네. 내 아내 좀 잘 봐주지.”

“분통 터졌겠구나.”

이렇게 말해 주는 센스!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 달라는 것이다. 그 소리에 나는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그렇게 말한다고 면허증을 주나?”

물론 면허증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자는 따뜻한 위로와 충분한 공감만으로도 쌓인 감정을 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참 황당할 수밖에 없다. 면허증을 따는 것이 목적인데 여자들은 해답이 없다.

그러므로 남편들이여! 운전면허시험을 열 번 보든 스무 번을 보든 상관 말고 아내의 말을 들어만 주고 공감해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