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남편을 왕으로
[[제1500호] 2016년 4월 16일]
평생을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은퇴를 한 친구가 있다. 은퇴 얼마 후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짐 속에 못 보던 상자 하나가 굴러다녔다. 짐을 옮기고 내리고 하는 소동 속에 친구가 상자를 가리키며 무슨 상자냐고 물었다. 아내는 무심결에 대답했다.
“으응, 아무것도 아냐. 중요한 것 아니고 그냥 잡동사니들!”
열어보니 상자 안에는 평생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직에서 일하며 받았던 표창장, 공로상, 감사패들이 들어 있었다.
“뭐? 잡동사니?”
친구는 눈앞이 어찔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몸 바쳐 희생한 흔적이 아내에게는 고작 잡동사니로밖에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친구는 이사한 첫날, 아내와 대판 부부 싸움을 벌였다.
남자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동물이다. 설사 허세에 불과하더라도 한껏 잘난 척을 하고 또 그것을 인정받아야만 살맛이 난다. 이런 남자들이 맘껏 잘난 척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바로 가정이다. 밖에서는 잘난 척하다간 따돌림 당할 수도 있다.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집이야말로 남자의 자존심과 긍지를 한껏 치켜세워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서투른 사람들이 남편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뭉갠다.
“쳇, 밖에 나가 다른 사람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면서 어디 집에 와서 큰소리야!”
“그깟 쥐꼬리만한 월급 벌어다 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유세 떨기는…….”
아내들의 이런 비난은 남편의 가슴에 독화살을 꽂는 것과 같다. 실제로 IMF 시절 아내로부터 자존심을 짓밟힌 많은 가장들이 삶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가 노숙자가 되었다. 날개 꺾인 남편들이 바닥에 곤두박질 쳐진 모습이다.
빅터 프랭클린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어 가는 유태인들을 돌본 유태계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나치 점령 아래에서 희망을 잃고 죽어 가는 많은 환자들을 살려 냈다. 그때 개발한 치료법이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삶의 희망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남자들도 그렇다.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절망의 강가에서도 언젠가는 나를 인정해 주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이 있으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아내야 말로 상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남편에게 삶의 열정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최대의 에너자이저이다.
유대인들의 교육 지침서인 ‘탈무드’를 보면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들이 반드시 읽어 주는 구절이 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너는 여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을 돈이나 벌어 오는 머슴처럼 여긴다면 너는 하녀가 될 것이다.”
가부장적 문화에서 벗어나 여권이 신장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남편의 염장을 지르는 빡센 아내의 소리는 독이 될 뿐이다. 아내들이여! 왕비가 되고 싶다면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라. 그러면 당신의 머리 위에 빛나는 영광의 관이 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