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앞치마를 두르는 멋진 남자

[[제1509호]  2016년 6월  18일]

집에만 들어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제왕적인 남편이 있었다. 가족을 위해 돈 벌어 오는 일을 독립 운동만큼 대단하게 생각하는 남편이었다.

“어이, 재떨이.”

“어이, 물.”

남편은 소파에 꿈쩍 않고 앉아 아내를 몸종 부리듯 부려 먹었다. 심지어 한밤중에도 배가 고프면 아내를 깨워 라면을 끓이라고 한다. 아내는 자신을 분식집 아주머니나 여종업원으로 여기는 남편의 행동이 점점 괘씸하게 느껴졌다.

어느날, 저녁 식사를 마친 남편이 설거지하는 아내에게 또 명령을 내렸다.

“어이, 담배 좀 가져와.”

아내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더 이상 참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담배를 휙 집어던지면서 한마디 쏘아붙였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

제왕적인 남편이 참고 넘어갈 리 없었다. 대판 부부 싸움이 벌어졌다. 어떻게든 아내 위에 군림하려는 남편과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당하고도 참고 살아온 아내의 싸움은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한번 바깥으로 폭발한 갈등은 무서운 속도로 파국을 향해 치달아갔다. 다행히 두 사람은 이혼 직전에 우리 부부가 개최한 가정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조금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나 역시 젊어서는 집안에서 제법 큰소리를 치며 살았다. 아내가 몇 마디 대꾸라도 할라치면 대번에 “여자가 어디서…”라는 말로 억누르곤 했다. 가부장적 문화의 유전자가 나에게도 깊이 각인되어 있던 탓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와 나의 처지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어느새 나는 아내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흰머리 소년이 되었다. 이제는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하면 설거지는 으레 내 차지다. 옛날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내가 자청해서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 나이든 남성들이여. 그렇게 한다고 나를 책망하지 마시기를…….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생존 전략이요, 노후 대책이기 때문이다. 또 젊은 시절 아내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다. 아내 말마따나 이제야 철이 든 것인지 모른다.

아내는 내가 해 주는 설거지가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남편이 나를 정말로 생각해 주는구나,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더 고맙다고 한다.

흔히 성공한 남자는 아내로부터 설거지를 안해도 면죄부를 받는다고 한다. 남편의 성공 그 자체가 큰 보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한 남자가 앞치마를 두른 모습은 훨씬 더 근사해 보인다. 이제는 앞치마가 공처가의 상징이 아니라 열린 사고를 가진 멋진 남자의 상징물이 된 것이다.

남편들이여! 기꺼이 앞치마를 둘러라! 내가 남성들의 공공의 적이 되더라도 나는 외칠 수밖에 없다. 앞치마와 빨간 고무장갑이 잘 어울리는 남자가 사랑받는다. 이왕 앞치마를 둘렀다면 아내를 단번에 쓰러뜨릴 근사한 메뉴 한두 가지쯤은 비장의 무기로 갈고 닦아라! 이런 남편이 있는 가정에 갈등이나 불행의 그늘이 드리워질 리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떨어지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