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짝짓기의 짝이 있다는 것은

[[제1524호]  2016년 10월  29일]

결혼 적령기란 말은 적령기에 결혼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결혼을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에서 일자리가 있기 때문에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결혼이 늦어지는 사람들 중에는 기반을 잡은 후에 결혼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결혼하는 것이 바로 기반이다. 혼자 살면 생활이 불규칙하고 불안정하다. 돈도 모으기 어렵다. 돈을 모을 구체적 목표도 의욕도 없다. 기반 잡기는 점점 멀어진다.

결혼은 사랑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모루아는 “성공적인 결혼은 매일같이 개축해야 하는 건축물과 같다”라고 했다. 결혼은 ‘언제나 공사 중’의 단계다. 살아가면서 서로가 개선되고 좋아지는 과정인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사람끼리 만나 서로 보완해가는 것이다. 필이 꽂히면 분별력을 흐리게 한다. 사랑의 묘약은 그만큼 힘이 세다. 그래서 결혼은 판단력이 부족해서 한다고 한다. 이혼은 인내력이 부족해서 헤어진다고 하며, 재혼은 기억력이 부족해서 다시 결혼한다고 한다.

결혼 전의 두려움은 누구나 갖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동안은 혼자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와 같이해야 한다는 것에 주저하게 된다. 부모와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 경제적 부담과 책임도 있다. 누군가의 반쪽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이 어찌 간단히 치를 일이겠는가.

특수한 사명이 있지 않은 한,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기본 도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생명체는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 생식하고 확대번식해야 한다. 그래서 암수의 짝짓기가 축복으로 주어진 것이다.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짝짓기의 짝이 없는 것이다. 불쌍하다는 말은 곧 ‘쌍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보석은 못보고 그냥 지나치기 마련이다. 멀리 보이는 파랑새만 잡으려 하니 문제이다. 어디 다른 곳에 진짜 내 사랑이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결혼을 자꾸 미루게 한다.

결혼이 고통스러운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고 또 결혼 후에도 그 안에 머물고 있을까. 더 나은 삶, 보다 큰 행복의 축복이 결혼 후의 인생에 있기 때문이다. 옛날 희랍인들은 결혼하는 신랑 신부 머리에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 그만큼 결혼을 위한 선택은 당사자들을 승리자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같이 산다는 뜻의 동거(同居)동락은 즐거움이 있지만 때론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결혼 생활은 마술 같은 환상적인 일만 계속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노력하고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결혼 생활에는 행복과 희열과 웃음이 있다. 그러나 독신 생활은 가족이라는 족쇄가 없다. 고독 속에 누리는 자유로움일 뿐이다. 결혼자들만이 누리는 그런 축복과 희열과 행복을 알 수가 없다. 결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축복의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