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부부 기싸움

[[제1526호]  2016년 11월  12일]

“부부 싸움 후 제 무기는 말 안 하고 버티는 거예요. 오늘로 5일째 묵언수행 중입니다. 절대 제가 먼저 말하지 않을 거예요. 말 안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나요?”

이메일로 상담을 청해 온 부부 사연이다. 그녀의 하소연을 읽다 보니, 지금 열심히 헛다리 긁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신랑은 ‘여자는 초장에 잡아야 한다’는 지극히 왜곡된 정보에 젖어 있다. 신부는 ‘신혼 초에 기선을 뺏기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갇혀 있다.

이들 부부처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시작되는 싸움은 대개가 ‘기선 잡기’가 목적이다. 신랑이 변했다며 하소연하는 그녀 역시 신랑이 소리 지르면 기죽기 싫어 같이 대응한다. ‘지금 기가 꺾이면 끝’이라는 각오로 죽기 살기로 싸운다. 필사적인 권력 다툼이 되는 것이다.

“신혼 초 부부 싸움에서 져주기 시작하면 평생 잡혀 산다고 하더라고요. 하루는 말다툼 끝에 화를 참지 못해 문짝을 주먹으로 내리쳤어요. 아내가 놀라서 울더라고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거기서 달래 주고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울 것 같아 그냥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언젠가 아내가 그러대요. 그날의 사건이 오랫동안 상처가 되었다고요.”

여자의 가슴에 난 상처는 평생을 간다. 조금만 양보하고 넘어가도 될 일을 ‘내가 왜 져주어야 해?’ 하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걸고 넘어졌다. 당연히 남자인 자신이 가정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결혼했다고 가부장적인 태도로 돌변하느냐는 것이다. 결혼 후 더 이상 이렇게 싸울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결국 부부 상담을 받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자기중심적 사고와 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한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관심과 바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개선의 의지가 있고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애정이 있어야 싸움도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지난 세월이 얼마나 한심한 소모전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공동체 군집 생활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욕구가 갈등이고 상처가 된다. 부부라는 관계도 최소 단위의 군집 생활이다. 자기중심적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조건적인 기선 잡기 전투를 벌이는 이들은 어떨까? 끝내 화해에 이르지 못하고 둘 중 한 사람이 승자가 된다면, 그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은 정복자, 또 한 사람은 피정복자라면…? 사랑하는 배우자 위에 그렇게 올라탄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서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아껴 살아도 모자란 세월이 부부의 삶이다. 그런 마당에 누구의 기를 꺾고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배우자를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내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다. 미숙한 사랑은 자기중심적이다. 성숙한 사랑은 상대방 눈높이로 사랑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는 마누라가 재산 일호이고 보물이다. 장로님들이여! 노후대책으로 그 보물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충성을 다해 섬기고 봉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