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브라보 마이 라이프!
[[제1583호] 2018년 2월 10일]
‘브라보 유어 라이프’라는 보험 광고 카피가 있었다. 누구는 이 카피가 어법에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언어란 감각적으로 확 와 닿으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말이 좋다. 마치 내 인생이여! 힘을 내라! 브라보! 하는 것 같아서다.
나이가 들어가는 즈음의 나는 나이가 드는 것도 축복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이 드는 게 축복이라니, 미쳤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에 나이가 들어갈 바에는 ‘이것이 축복이다’ 딱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우거지상하고 있어야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다. 오히려 그냥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럴듯하더라.
나이가 드는 것은 경험도 많아지고 지혜도 생기고 이해력도 많아지는 것이다. 예전 보다 훨씬 좋은 환경, 의료, 섭생, 운동, 지식, 인간관계 등에 있어 모든 게 유족해졌고 건강이 유지되니 훨씬 낫다. 이제 100세 시대를 지나 120세 시대라고들 한다.
젊은 시절의 내핍과 부족 그리고 살아내기 위한 고통 등 요즈음 젊은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견뎌낸 우리들이다. 추위 더위 굶주림 가난 질병 정변 불공평 등을 다 이겨낸 세대이니 못 이겨낼 환경이 없다. 배수진을 치고 살았다. 조금만 불편해도 참지 않는 요즈음 세대와는 다른 생활력이 있다.
지나 놓고 보니 우리는 어느 상황이든지 적응 할 수 있는 능력이 강해진 세대이다. 그런 능력이 있으니 그 아니 축복인가? 좌절 실패 통찰 관조 인내 자기 분수와 한계를 아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나이를 물을 때 미국 사람들은 ‘하우 올드 아유?’ 즉 얼마나 늙었느냐고 묻는다. 한국 사람들은 몇 살 이냐고 묻는다. “살”은 얼마나 살았느냐는 뜻이다.(이건 순전히 내 해석이다.) 한국 사람들의 말에는 지혜와 진리가 담겨 있다.
산다는 것이 힘겨울 지라도 한국인은 누구나 살만한 세월을 사는 것이다. 젊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 작은 생명하나에도 연민을 느낄 수 있는 마음도 좋다. 원숙함, 통찰력, 안정감 등을 느낄 때 살아있음이 감사하다.
아직은 내 발로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먹고 싶은 거 만들어 먹고 자식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줄 수 있는데 뭘 더 바라나 싶다.
굉장히 거창한 것, 대단한 성취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꽃도 시들기 전에 물을 주어야 싱싱함이 오래 가는 것처럼 내 인생도 아주 시들기 전에 물도 주고 가꾸면서 살아야지 생각한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오늘보다 젊은 날은 없다. 내 인생아 힘내라. ‘브라보’를 외쳐라. 힘이 솟아난다고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내라.
브라보 마이 라이프!